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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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9)
홍귀달의 집이 남산 밑에 있었는데 언덕에다 초가로 정자를 짓되 세로 가로가 겨우
두어 발 되게 지었다.
정자 이름을 허백당(虛白堂)이라 하고 퇴근 후에는 복건을 쓰고 여장을 짚고 주위를 거닐며 '나는 아흔아홉 칸 집에
산다'라고 자처하니 세상 사람들이 속을 모르고 홍귀달의 집이 정말 아흔아홉 칸이나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호위달이 파직당하고 야인이
되어 칩거하면서 남긴 시구에,
山雨松風厭喧(산우송풍염훤)
'산비와 솔바람에도 시끄러움을 싫어하노라'라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더라도
홍귀달이 얼마나 시끄러운 세상을 꺼려하였던가 단적으로 알 만한 일이었다.
묘희는 그런 조부의 인품을 존경하고 사랑하였다.
홍귀달은
얼마 후 경기감사로 강등(降等)되어 복직되었지만 조금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악아, 사대부의 양첩(良妾)의 딸로 열다섯 살에서 서른
살까지 되는 사람을 후궁으로 간택한다는 어명이 내린 모양인데, 큰일이구나. 너를 숨길 수도 없고 어디로 도망치게 할 수도 없고 어찌했으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홍귀달은 망설이다가 그 말을 꺼냈다.
묘희는 놀라지 않았다.
"조부님, 소녀도 이미 소문을 들었사옵니다. 이
몸이 아무리 양첩 소생이오나 조부님 서손녀이온데 조부님 뜻을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하옵니다. 그래서 칭병(稱病)하고 드러누우려던 참이온데,
조부님께서 부르시기에 들어왔사옵니다."
"옳지, 옳지! 과연 네가 내 손녀로다! 이 할애비가 묻기도 전에 할애비 마음을 알고 따르려
하였단 말이지?"
홍귀달은 질화로 위에서 어루만지던 묘희의 손을 꼭 쥐고 흔들면서 기특해 하였다.
홍언국도 서녀 묘희를 투기와
모함이 끊일 새 없는 복마전(伏魔殿) 같은 궁중에 들여보내 색광(色狂) 같은 왕의 노리개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하였다.
홍귀달은 홍언국을 시켜 묘희는 그날로 갑자기 병이 난 듯이 자리보전을 하였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홍언국이 잡혀가서 국문을 받게 된 것이었다.
홍귀달은 가만있을 수가 없어 입궐하였다. 그가
승정원을 통해 왕에게 서계(書啓)한 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