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서해안 마을 숲-서천 동백정]
서천 동백숲 내륙 가장 북쪽에 위치 … 해풍 영향 나무 키 2~3m로 작지만
관목처럼 넓게 퍼져 자라는게 특징, 주차장 방향 해송림 군락도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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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을 재촉하듯 수줍게 빨간 꽃망울을 머금은 동백나무.

곧 흐드러지게 피어나 섬을 온통 붉게 밝힐 채비를 한 듯 수줍게 고개를 내민 그 자태가 설렘과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하다.

올 겨울 유난히도 혹독했던 추위 탓일까. 봄 마중을 나온 따사로운 햇살에도 아랑곳없이 굳게 닫힌 꽃망울은 만개를 기다리는 이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보통 동백나무는 겨울에도 꽃이 피지만 봄의 시작인 3월에 개화를 시작해 4~5월까지 절정에 이른다.

전국에 자생하는 동백나무는 전남 여수 오동도나 전북 고창의 선운사 등의 동백나무 숲이 유명하지만 유독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서천의 ‘동백정(冬栢亭)’이다.

서천 동백정이 빠질 수 없는 이유는 숲이 자리한 위치나 그 생김생김은 물론 숲이 만들어진 전설 등 역사적 배경까지 오묘한 매력을 풍기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찾은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동백나무 숲은 3월 중순의 날씨에도 세차게 몰아치는 해풍이 가히 한겨울 못지않았다.

마량리 비인만의 끝자락에 위치한 내륙에서 가장 북쪽에서 동백나무 숲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해 동백의 북방한계선인 셈이다.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는 차나무과(科)에 속하는 사철 내내 잎이 푸른 교목으로 대부분 7m 정도 자라지만 크게는 20m 까지도 자란다.

마량리 동백나무 숲은 정확한 수령 파악이 어렵지만 현재 나무의 형태나 기존 사료 등을 종합해보면 500년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곳 역시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제184호)처럼 1965년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여느 동백나무 숲과 달리 동백정은 식물분포학적이나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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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분포학적 가치는 마량리 동백나무 숲의 위치와 그 나무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마량리는 동백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이곳의 나무는 2~3m로 키가 작지만 관목처럼 넓게 퍼져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인 동백나무가 7m 이상 자라는 것을 볼 때 생태학적 가치 또한 희귀하다.

동백정의 동백나무가 이런 희귀한 형태로 자랄 수 있었던 요인은 사시사철 매몰차게 불어 닥치는 해풍의 영향이 가장 크다.

가지가 부러지고 잎이 찢겨질 듯한 모진 바람에도 사계절 푸르름과 붉은 절개를 간직하려는 동백나무의 그 노력이 눈물겹다.

마량리 동백나무숲의 역사적 가치는 수백 년에 걸쳐 전해져 내려오는 기원에서 찾을 수 있다.

이곳의 기원과 관련한 얘기를 종합하면 대략 두 가지 압축된다.

시간은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마량리 인근 바닷가 마을에 살던 한 여인네가 고기잡이를 나갔던 남편과 장성한 아들을 모두 바다에 잃고 시름에 빠진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자식과 남편을 잃은 여인네는 슬픔에 죽고만 싶었던 찰라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바닷가에 가면 커다란 널과 동백꽃씨 한 되가 있을 것이니 동백은 심고 선당을 짓어 선황 다섯 분을 모셔라. 그리하면 바다가 잠잠해질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꿈에 깨고 바닷가에 나가니 노인의 말처럼 커다란 널 하나와 동백씨 한 되가 있어 그것을 심고 선황을 모셨더니 그 뒤 바다가 잠잠해 고기잡이를 나가도 무사히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 당제를 소홀히 하자 세종때 왜구가 배 50여척을 타고 들어와 큰 난리를 겪은 후 정월 초사흗날 당제를 정성스럽게 지냈다고 한다.

비슷한 맥락의 얘기지만 다른 전설도 전해진다.

과거 마량지역 수군첨사(僉使)로 있던 한 관리의 꿈에 나타난 백발노인이 “바닷가에 핀 꽃 뭉치를 옮겨 심어 퍼트리고 제단을 세워 제를 지내면 험난한 바다를 잠잠해지고 마을이 번성할 것”이라는 계시를 내렸다.

다음날 관리는 바닷가에 나가 보니 꿈에서 본 꽃이 바다에 떠다니고 있어 노인을 말대로 꽃을 가져와 심은 것이 이 곳 동백나무 숲이 됐다고 전해진다.

이런 이유에선지 동백나무 숲에서는 현재까지 매년 음력 정월이면 마을사람이 모여 당제와 풍어제를 지내던 풍습이 전해내려 온다.

그래서 동백나무 숲에는 당제를 지내던 당집이 남아있다.

수백 년의 세월동안 혹독한 바닷바람을 견뎌내며 붉은 절개를 이어온 동백나무 숲 언덕 마루턱에 자리한 정자(亭子)인 ‘동백정’ 역시 이곳의 또 다른 볼거리다.

1965년 한산군 관아의 목재를 옮겨다 지었다는 동백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中層) 누각이다.

이곳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수록돼 있다. 조선전기에 이미 같은 이름의 ‘동백정(冬柏亭)’이라는 누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언젠가 붕괴되어 없어지고 다시 1965년에 누정을 옮겨 세우게 됐다.

이곳에 오르면 정자 기둥사이로 펼치지는 전경은 한 폭 그림과도 같다.

그림 속 바다에는 물위에 살포시 올려놓은 오력도 모습이 마치 동백섬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이야 말로 서해안에서 손꼽히는 절경이라는 게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또 서면 동백나무 숲 전경과 함께 해송림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주차장 방향으로 숲 너머 바닷가에 해송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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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동백나무 숲. 마량리는 동백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상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이곳의 나무는 2~3m로 키가 작지만 관목처럼 넓게 퍼져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조재근기자

마량리가 속한 비인반도는 동서로 바다에 닿은 새머리 모양으로 서해안에서는 드물게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창해는 물결치고 나는 봉황새는 입부리를 오무리고 저녁 햇빛은 아늑하고 희미한데 조수 밀려온다. 바닷물은 하늘 찌를 듯 큰 물결로 일색을 침하고 큰 물결이 언덕을 치니 바닷가 반은 침침하고 반은 환하다.구름 깃발은 너풋너풋 번개가 번쩍 끌고 나가는 듯 구슬피리 소리는 고요하여 파리가 잠깐 우는 듯 윙윙댄다. 조물주의 조화가 황혼하여 적은 아이를 연희로 희롱하듯 한다. 누대를 층층으로 다보지 아니해도 가하다.”

이렇듯 1591년 관찰사 이성중도 서해 용왕의 용트림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동백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금은 인근에 화력발전소가 들어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원래 이곳은 섬이었다.

이곳 주위로 밀물이 들어오면 바닷물에 잠겨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육지와 연결되는 그런 모습이었다고 한다.

특히 1984년 화력발전소가 준공하기 전 이곳 주변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동백해수욕장’이 있었다.

새하얀 백사장이 일품이었던 동백해수욕장은 발이 쑥쑥 빠질 정도로 고운모래를 자랑했다고 한다.

때문에 매년 동백정을 찾아오는 20만 명의 관광객 중 다수가 그 당시 추억을 곱씹으려는 60~70대라는 점이다.

서남옥 서천군 문화관광해설사는 “당시 지역경제를 위해 화력발전소가 들어서긴 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며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동백섬과 동백해수욕장까지 아직 남아있다면 지금 서해 최고의 관광지는 바로 이곳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백꽃이 만개할 즈음인 지금 서천의 명물 주꾸미도 살이 여문다.

숲 전체를 붉게 수놓은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눈과 마음에 새기고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축제장을 찾아 알이 꽉 들어찬 제철 주꾸미까지 맛본다면 아마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 최고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충남 서천=조재근 기자 jack333@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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