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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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8)


경기감사 홍귀달(洪貴達)의 아들인 참봉 홍언국(洪彦國)의 서녀에 묘희(妙姬)라는 이름을 가진 딸이 있었다.

해진 후에 동산에 떠오르는 만월(滿月)처럼 환한 미모의 처녀였다.

어느 날 홍귀달은 서손녀 묘희를 불러 어깨를 주무르게 하고는 이 애를 어떻게 하면 궁중에 불려 들어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고는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묘희야, 할애비가 할 말이 있느니라. 어깨 그만 주무르고 앞에 와 앉거라."

묘희는 안마하던 손을 거두고 조부 홍귀달이 불을 쬐고 있는 질화로 앞으로 옮아가 다소곳이 앉았다.

서손녀라고 하지만 예의 바르고 아름답게 생겨서 홍귀달이 끔직히 아끼고 귀애하는, 아직 소녀 티를 벗지 못한 처녀였다.

"얘야, 어디 네 손 좀 만져 보자꾸나, 네 손이 약손인 모양이야, 네가 이 할애비 어깨를 안마해 주면 결리고 무겁던 어깨가 시원하고 가뿐해지거든."

홍귀달은 묘희의 섬섬옥수를 잡아 어루만지며 칭찬을 하였다.

묘희는 경의(敬意)를 표하듯 홍귀달의 주름진 노안을 우러러보며 조용한 미소로 답하였다.

묘희는 조부 홍귀달을 존경하고 극진히 섬겼다. 서자라도 자식 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 양반사회인데, 홍귀달이 서손녀인 묘희를 자기 집에다 데려다 기르면서 적손녀 못지 않게 귀애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조 때 문과에 오르고 욱일승천의 기세로 승진을 거듭하여 이조판서. 참찬(參贊)을 거쳐 경기감사가 된 홍귀달은 평생에 남과 눈 한번 흘긴 일이 없었으나 국사에 대해
말할 것이 있으면 결코 침묵하지 않는 강직한 신하였다.

홍귀달은 무오사화 이후로 왕이 공포 분위기를 틈타 바른 말을 하는 대간(臺諫)을 억압하고 사냥에 정력을 쏟으며 국사를 등한히 하자 수천 수만 자(子)에 달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려 왕의 마음을 돌리려 하였고, 항상 입시(入侍)하여 아뢸 때는 시간이 지나도록 아뢰기를 꺼리지 않았다.

왕은 마침내 홍귀달을 귀찮은 존재로 여겨 파직을 시키고 말았다.

자제들이 보다 못해 불만을 말하였다.

"주상전하의 처사가 아무리 못마땅하시더라도 집안 식구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좀 참으시지 않고 그러십니까?"

"내가 역대 조정에 은혜를 입었고 또 이미 다 늙었는데 무엇이 더 아쉽고 두려워서? 할 말을 못하고 눈치를 보아야 한단 말이냐?"

홍귀달은 지금 자기가 어떤 곤욕을 치르더라도 서손녀 묘희를 호색가인 왕의 제물로 만들지 않으려고 고심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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