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토일]진천 농다리
거대한 지네가 지나가는 형상, 남아있는 24개 교각길이 96m
과학적 원리 적용 물살에 강해 … 인근 산책로·전시관도 가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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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어느새 겨울인가? 몸이 움츠러든다.

그렇다고 방구석에만 들어 앉아 TV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겨울의 문턱, 부담이 없으면서도 손쉽게 ‘일상탈출’의 홀가분함을 느낄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이번주 나들이 추천지는 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충북 진천 농(籠)다리다.

◆천년의 숨결

중부고속도로를 달려본 사람들은 한 번쯤 봤을지도 모른다. 고속도로 상행선 진천을 지날 때 즈음 오른쪽 강변에 돌다리가 나타난다. 순식간이라 그냥 지나치기 일쑤지만 이곳이 바로 천년을 버텨온 ‘농다리’다.

농다리의 생김새는 특이하다. 높이는 낮고 투박하지만 야무지다. 얼핏보면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퉁기며 건너는 듯한 모습의 형상을 하고 있다. 자연석을 축대 쌓듯이 안으로 물려가며 쌓아올린 교각의 너비가 그 위에 올려진 상판보다 넓어 튀어나온 교각의 양끝이 지네 발처럼 보인다.

▲ 농다리의 생김새는 특이하다. 높이는 낮고 투박하지만 야무지다. 얼핏보면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퉁기며 건너는 듯한 모습의 형상을 하고 있다. 자연석을 축대 쌓듯이 안으로 물려가며 쌓아올린 교각의 너비가 그 위에 올려진 상판보다 넓어 튀어나온 교각의 양끝이 지네 발처럼 보인다.
농다리라는 이름은 밟으면 움직이고, 잡아당기면 돌아가는 돌이 있다는 뜻이란다.

‘상산지(常山誌)’나 ‘조선환여지승람(朝鮮環與勝覽)’에는 고려초기에 하늘의 별자리 28개를 이용해 28칸(교각)으로 만들었다고 설명돼 있다. 그러나 현재는 24개의 교각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리는 지네만큼이나 굽어있는데다 제법 길어 96m에 이른다. 교각은 아귀가 맞지 않는 것처럼 조금 커보이는 것도 있고, 작아보이는 것도 있다. 고속도로상에서 보면 상판이 돌덮개가 아니라 검은 나무판처럼 보이지만 막상 가보면 큼지막하고 넓적한 바위판이 여럿이다. 다리 위를 걷다보면 아무렇게나 쌓은 것 같지만 천년 넘게 버텨왔다는 것 자체가 신비할 정도다.

다리 건너 산책로를 따라 가보면 초평저수지가 나타난다. 5분만 올라가면 거대한 호수가 나타나니 신기할 수 밖에 없다. 충북에서 가장 큰 저수지란다. 저수지 가장자리에는 호수를 바라보기 좋게 나무 전망대가 마련돼 있어 한층 더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생김새 다른 돌이 어우러진 천년 세월

다리를 구성한 돌들은 모양이 제각각이다.

모두 사력암질의 붉은색 돌을 사용했는데 깎거나 다듬지 않아 투박하다. 얼기설기 얹어 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강한 물살에도 떠내려가지 않는 과학적 원리와 함께 철학적 뜻까지 담고 있다.

'조선환여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자석배음양, 즉 음양의 기운을 고루 갖춘 돌을 이용해 고려때 축조했다고 한다. 장마 때면 물을 거스르지 않고 다리 위로 넘쳐흐르게 만든 수월교(水越橋)형태로 만들어 오랜 세월을 이겨냈다는 것이다.

또 교각 역할을 하는 기둥들은 타원형으로 만들어져 물살을 피하고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을 막는다. 어눌하게 생긴 돌다리가 천년을 이어온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10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농다리는 지난 1976년 충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됐다. 당시만 해도 24칸이 남아있던 것을 고증을 통해 최근 28칸으로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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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다리’는

동양 최고(最古)의 돌다리다.

생김새가 서로 다른 돌을 얹었지만 비바람과 홍수를 거뜬히 이겨녀 천년의 세월을 견뎌냈다.

멀리서 보면 다리가 아니라 마치 돌무더기처럼 보인다. 돌을 원래의 모양 그대로 쌓아 투박하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듬성듬성 구멍도 뚫리고 발로 밟으면 삐걱거리며 움직인다. 큰 돌을 쌓고 그 사이엔 작은 돌을 끼워 넣어 균형을 잡았다.

'농다리'의 '농'자는 해석이 분분하다. 물건을 넣어 지고 다니는 도구의 '농(?)'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혹은 고려시대 임연 장군이 '용마(龍馬)'를 써서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에서 '용'자가 와전돼 '농'이 됐다고도 한다.

◆세월만큼 오래된 농다리에 얽힌 이야기

농다리가 있는 구곡리는 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농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미호천변은 1982년 댐 확장으로 수몰되기 전까지 농다리를 통해 구곡리와 왕래하던 마을이 있던 곳이다.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에 부잣집이 있었는데 동냥을 온 도사에게 밥은 커녕 소여물을 줘 보낸 후 큰 물난리가 났다는 것. 베풀지 않고 살았던 부잣집은 마을이 수몰된 지금도 저수지 바닥에서 금방아를 찧고 있다고 한다.

또 저수지와 구곡리를 잇는 길을 뚫었는데 용의 허리를 자른 격이라 비가 많이 오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현재까지도 마을 노인들을 통해 구전되는 얘기들은 대부분 물에 대한 얘기다.

농다리가 생겨난 이유도 고려시대 부친상을 당하고 친정으로 돌아가는 여인이 물을 건너지 못하자 다리를 놔주었다는 것에서 비롯됐다.

물과 마을에 얽힌 이야기는 농다리와 함께 천년을 전해오고 있다.

▲ 산책로에서 내려다본 초평저수지.

◆농다리 주변 가볼만한 곳은

인근 산에 자연석 돌과 나무 등으로 꾸민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이 길을 따라 야생초 화원, 자연석 돌과 꽃 등이 어우러진 암석원 등을 꾸며 놨다. 또 산책로 중간에 전통 정자와 함께 주변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목재로 된 휴게소까지 있다. 농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포토데크'와 농다리의 역사 등을 사진과 영상물 등으로 볼 수 있는 '농다리 전시관'도 꾸며져있다.

진천=이승동 기자 dong79@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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