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청년에게 말한다. “작은 다이아몬드 하나를 캐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면서 흙을 파야 합니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노력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41살의 송완식 씨는 이렇게 얘기했다. 그는 전국에 80여 개 체인점을 가진 대관령 양푼이 동태찌개의 CEO이다. 또 한국청년회의소(JC) 사무총장에 대전시티즌 이사, 대전양궁협회 회장이라는 직함도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성공한 청년사업가인 셈. 그렇다고 부잣집 자제도 아니다. 충남 논산의 조그마한 정미소 아들로 태어나 그곳에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사업 도전기 역시 순탄치 않았다. 참 다양한 직업을 거쳤고, 그동안에 시쳇말로 하면 ‘말아먹은 적’도 있다. 그래도 송 대표는 다시 일어섰고, 이제 제법 자리를 잡았다는 말도 듣는다. 그 비결이 궁금해 물었더니, 대답 대신 자신이 살아온 길을 소개했다.

▲ 송완식 JCI 사무총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성공할 수 있다”며 청년들에게 꿈과 열정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김호열 기자 kimhy@cctoday.co.kr
- 많은 직업을 가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전으로 와서 대우전자 서비스에 취직한 게 처음입니다. 제가 공고를 나왔으니까요. 거기서 한 2년 다녔죠. 그런데 적성에 안 맞는 거예요. 그래서 그만두고 택시 운전을 시작했어요. 한 1년. 이번에는 비전이 없는 것 같더군요. 또 그만 두고 이번에 김밥배달을 시작했어요.”

- 왜 이렇게 직업을 많이 바꿨나.

“천직을 못 찾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제가 원래 도전하고 변화하는 걸 좋아해요.”

송완식 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김밥배달은 한 6개월 했어요. 그리고는 처음으로 제 사업체를 차렸어요. 매형과 함께 익스프레스(포장이사) 회사를 만든거죠.”

- 몇 살 때였나.

“22살 때였을 겁니다. 당시만 해도 익스프레스가 별로 없어 비전도 있어 보였고, 실제로 그만두고 나오기까지 4년여 동안 사업도 잘 됐어요.”

1993년경 대전 유성구 전민동 엑스포아파트 입주 물량을 송 대표의 익스프레스가 도맡다시피 했다. 충남고의 둔산 이전에 따른 이사도 그의 회사에서 한 것이다. 송 대표는 그가 25살이 되던 해에 익스프레스 회사를 매형에게 맡기고, 대전 중구 은행동에 당구장을 차렸고, 다시 몇 년 후 서구 가수원동에 중고자동차매매상으로 변신한다.

- 당구장이나 중고차매매상은 잘 됐나.

“당구장과 중고차매매상으로 돈도 꽤 벌었습니다. 그런데 사업도 흐름이라는 것이 있어요. 익스프레스도 몇 년 지나니까 경쟁이 심해져 포화상태에 달했고, 당구장도 PC방이 나오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됐습니다. 계속 변화하는 흐름에 맞춰 가야했습니다.”

- 중고차매매는 전혀 경험이 없는 일 아니었나.

“경쟁이 심했습니다. 10여년 이상 그 일만 하던 분들도 많았고요. 그래도 제가 그 안에서 판매 1등까지 했지요. 전 남들이 보지 않는 틈새시장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든다면 다른 상사들은 일반인이 가져오는 차량을 사서 다른 사람에 팔지만, 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중고매매상들에게 중고차를 싸게 구입했어요. 당시에 가장 잘 팔리는 중고차를 중심으로요. 지금이야 인터넷이 발달해서 전국적으로 중고차 가격이 비슷하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전국을 돌다보면 조금 싼 지역이 있었어요. 그런 곳에서 싸게 구입해서 제 고객에게 좋은 차를 싸게 파는 것에요.”

- 대부분 성공 스토리인데 실패한 경험은 없나.(송 대표는 이 질문에 꺼내 놓기 싫은 비밀인 듯 조금 망설였다. 실패없이 성공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핀잔에 송 대표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사실 완전히 알거지가 된 적도 있지요. 중고차매매상을 한 2년하고 나선, 그걸 전부 정리하고 가지고 있던 돈까지 모두 털어서 주점을 하나 차렸어요. 친한 친구와 함께요. 그런데 이게 사기였던 겁니다. 이 친구가 주점을 차린 지 몇 달 안 지나서, 사업을 몰래 정리한 후 도망을 간 거예요. 그 때 한 8억 원 정도 날렸어요. 달랑 살고 있던 집 한 채 남았지요.”

- 사업 실패 후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인가.

“사업이 망할 수도 있고 돈을 날릴 수도 있지만, 사람에 대한 배신감,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이 저한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니까 모든 것이 두렵게만 느껴지더군요.”

- 어떻게 극복했나.

“용서에요. 그리고 지난 일을 과감하게 잊어버리는 것이었어요. 그냥 그 사람을 용서하고 잊어버리자고 결심하니까, 그 때서야 제 마음도 좀 편해지더군요. 그리고 남들이 위로의 말은 해 줄 수 있지만, 결국 극복은 혼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난 나를 믿는다. 난 할 수 있다’라고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응원을 했어요.”

송 대표는 이 때 사회에 나온 후 처음으로 몇 개월을 직업없이 쉬었다고 했다. 매일 산에 오르면서 스스로를 응원하고 다독였단다.

- 그리고 지금의 대관령 양푼이 동태찌개를 창업하게 된다. 두려움은 없었나.

“전 새로운 도전을 좋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을 망설이지만, 전 도전하는 것에는 두려움이 없지요.”

-이 사업을 하게 된 배경은 뭔가. 돈도 없었을 텐데.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와 등산을 다니던 때였어요. 아내 생일이 돌아왔는데 가진 돈도 없고 해서 그냥 동태찌개나 먹으러 갔죠. 그런데 그날부터 동태찌개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전통한식을 제대로 만들어 프랜차이즈로 확장하면 어떨까 하는 구상도 떠올랐어요. 그래서 빚 청산하고 남은 돈 2700만 원에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아파트를 팔아 생긴 돈까지 합쳐 7000만 원으로 사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어요.”

- 동태찌개를 끊일 줄이나 알았나.

“전국에 동태찌개로 소문난 집은 빼놓지 않고 찾아다니면서 나름대로 비법을 연구했어요. 돈 주고 비법을 배우기도 했죠. 막상 돌아다녀보니 우리나라가 이렇게 넓은 줄 몰랐어요. 그리고는 2005년에 테이블 14개 규모의 작은 동태찌개 전문점을 냈어요.”

‘대관령 양푼이 동태찌개’는 창업 5개월 정도 지나자 ‘맛있다’는 입소문에 손님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대박행진의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창업 6년만에 현재 80개의 가맹점을 가진 기업을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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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은 것인가, 성공 비결이 있는 것인가.

“아직 젊은 나이에 이런 말을 하면 건방지다고 할 수 있지만, 굳이 성공의 열쇠라고 한다면 ‘인간성’인 것 같아요. 인간성이 좋으면 인간관계가 좋아지고, 인적 네트워크가 넓고 깊게 형성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어렵고 힘들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힘을 주고 도와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얼마의 자금이 있어야 무슨 사업을 하고 어떻게 해 나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만약에 제 주머니에 10만 원이 있으면, 여기에 맞게 이 돈을 극대화시킬 방법을 궁리해요. 돈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말이죠. 도전해 보는 거죠.”

-현재 JC사무총장을 맡고 있는데.

“1년 임기로 우리나라 JC의 모든 살림을 꾸려나가는 직책입니다. 대전·충남에서 처음으로 나온 자리이지요.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지만, 대전·충남지역 JC의 발전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도 많이 했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적극 동참해 서명운동을 벌였고, 어린이지킴이운동, 제주도 7대 자연 경관 선정을 위한 캠페인도 주도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국가와 지역의 발전을 위해 봉사한다는 JC의 정신을 실천하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대전·충남 JC 회원들도 중앙무대로 진출해 보다 큰 꿈을 펼칠 수 있는 사례를 만들었다는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JC 활동이 사업이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나.

“30세부터 JC활동을 했는데, 그동안을 되돌아보면 JC는 내 인생의 스승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JC에서 인간 관계에 대해 알았고, 예의를 배웠습니다. 또 사업을 하다보면 꼭 필요한 기업 조직화나 기획, 일 추진 방법 등을 JC활동을 통해 배우고 익혔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은 JC에서 활동해 보라는 권유를 하고 싶습니다.”

- 대전시티즌 이사와 대전양궁협회 회장의 직함도 있는데.

“환원이라고 할지, 봉사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것 입니다. 제 아들이 축구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스포츠에 관심이 가더군요. 그래서 도움이 될만한 것이 없을까 하던 차에 주변의 권유로 시작했어요. 저도 주변과 사회의 도움으로 살아가는데 뭐라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청년은 꿈과 열정으로 도전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전정신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죠. 어렵고 힘든 일 중에 보석이 더 많습니다. 또 다이아몬드 하나를 캐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려 땅을 파야 합니까. 일을 두려워 하지 않고 찾아나선다면 그 끝에는 분명히 성공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마흔을 갓 넘긴 송 대표의 앞날에도 보다 큰 성공이 있을지, 큰 시련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는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인터뷰 말미에 10년 후 또 어떻게 변신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느냐 질문에 “저도 궁금합니다”라며 웃었다.

이선우 기자 swlyk@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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