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 총재가 어제 정계 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노병은 죽진 않지만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라는 맥아더 장군의 고별사를 인용하면서 그렇게 정치생활을 접었다. 10선 고지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심정이야말로 착잡하기 그지없었으리라.?

그것도 4·19 혁명 44주년을 맞아 홀연히 정계를 떠났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난 61년 처삼촌인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주도의 5·16 쿠데타에 35세의 나이로 가담한 이래 한국 정치사에서 담쟁이 넝쿨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온 것만 봐도 그의 정치 역정을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겐 언제부턴가 '풍운아', '영원한 2인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3김 중 JP만이 대권을 누리지 못한 채 정치의 전면에서 사라지는 순간이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한순간에 평가할 수 없듯이, 한국 정치사에서 차지해 온 3김의 비중을 감안한다면 그 공과를 일방적으로 재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3김 시대는 지역을 기반으로 자신의 권위를 창출해 낸 패거리 맹주시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돼 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침몰을 보면서 한 시대의 변화상을 생생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17대 총선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크다. 투표 다음날 새벽까지 민주노동당 노회찬 비례대표 후보와 시소게임을 벌인 끝에 거목 JP가 밀려나고 말았으니 이것 역시 많은 걸 시사해 준다. 정통 보수파로 자임해 온 노정객이 진보 정당 신예의 희생양이 되고 만 꼴이다. 이번 선거에서 비례대표 1번을 차지함으로써 '노욕'으로 비쳐진 것은 크나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2인자였던 JP는 그렇게 몰락한 대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화려하게 부활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바로 그건 자민련의 한계요, JP의 시대감각이 자의든 타의든 국민에게 어필되지 못한 탓으로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자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자민련도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자신의 지지기반인 충청도에서 겨우 4석만을 건진 17대 총선 결과에 자괴감마저 들었을 법하다. 정당투표에서도 3%에도 미치지 못하는 득표율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패전의 장수가 무슨 말이 있겠냐. 모든 게 저의 부덕한 탓"으로 돌리는 JP의 소회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JP의 몰락을 보면서 충청인에게 남는 인상 또한 마음속에 두고두고 간직될 수밖에 없다. 한때나마 밉던 싫던 JP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마냥 지역주의적인 틀에 갇혀 살 수 없는 시대에 진입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충청권에서부터 탈지역주의적인 바람이 일고 있음에 조그만 위안을 느낄 뿐이다. 이제 JP는 평생 과업으로 여겨 온 내각제를 정치권에 맡겨 두고 물러났다. "동쪽에 떠오르는 해도 아름답지만 정말 아름다운 건 석양에 이글거리는 노을이다." 이른바 그의 '석양론'이 그의 인생의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일 것인지 궁금하다. 결국 그것은 자민련의 향방에 달려 있다고 봐도 될까. 앞으로 주시할 대목이다.

문득 39세에 요절한 4월의 시인 신동엽이 생각난다.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지난 67년 '껍데기는 가라'에서 그토록 절규했던 메시지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신동엽이 JP와 같은 고향인 부여 금강가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성싶다. 4월의 의미, 나아가서는 역사란 뭔가. 정치권에 던지는 화두이자 교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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