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이 화창한 날이면 차라리 명절이 없는 게 낫죠. 가뜩이나 비가 많이 와서 돈벌이도 시원찮았는데..."

추석을 앞두고 충북 청원군 오창읍 원룸촌 인근 편의점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일용직 근로자 5명이 소주 2병과 삶은 달걀을 앞에 두고 지친 피로를 풀고 있었다.

20년째 공사장에서 노동일을 하는 방모(60)씨는 "벌써 추석이 다음주냐"며 "올해 여름엔 비가 많이 와서 일을 많이 못했는데, 무슨 돈으로 명절을 쇠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방씨가 올해 7~8월 평균 한 달간 일한 일수는 고작 10여일. 하루 12만원씩 계산하면 12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요새 어린애들은 용돈이 없으면 할아버지 곁에 오지도 않는다"며 "명절 때 손녀딸 손에 만원이라도 쥐어주려면 악착같이 일해야 한다"면서 소주잔을 비웠다.

옆에 앉아있던 이모(58)씨가 방씨를 거들었다.

그는 "나도 작년엔 한 달에 20일 넘게 일해 돈벌이가 괜찮았는데 올해는 10일도 못했다"며 "내가 우리 집 장남이라 챙겨야 할 식구는 많은데, 돈을 못벌어서 추석을 어떻게 나야 할 지 가족들 볼 면목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8일 청주기상대에 따르면 올해 6~8월 평균 강수일수는 52.8일로 1973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였다고 한다. 여름철 강수량도 1천197.8mm로 38년 동안 두 번째로 많은 양이었다.

특히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을 오르내리며 7월 17일부터 11일간 연속적으로 비가 내렸다고 기상청은 전했다. 건설 노동자들에겐 최악의 기상조건이었던 셈이다.

편의점에서 100여m 떨어진 원룸 신축공사 현장에서 밧줄에 의지해 매달려 있던 이모(60)씨는 "요새 날씨가 좋아서 일할 맛이 난다"고 웃더니 "차라리 추석 때도 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재료를 대주는 업체들이 다 쉬니까 어쩔 수 없이 일주일은 그냥 집에서 보내게 생겼다"며 아쉬워했다.

자신을 작업반장이라고 밝힌 조모(60)씨도 "우리에게 명절이나 주말은 큰 의미가 없고 단지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며 "비가 오면 일하고 싶어도 못하니까 날 좋을 때 벌어두는 게 우리직업의 특성"이라고 설명했다.

인근 상가와 대형마트에는 '한가위맞이 대잔치'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와 벽지 등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벌써부터 추석 차례상에 올릴 제수용품을 구입하러 나온 주부들도 눈에 띄었다.

귀가하던 근로자들은 "그래도 가족끼리 모이는데 명절기분은 내야 하지 않겠느냐"며 "덜 차리고 덜 먹는 게 추석을 지내는 우리만의 방식"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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