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권 법무법인 ‘내일’ 변호사

오랜 서울 생활을 접고 대전에서 둥지를 튼지도 어느새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대전에 내려와 살면서 느낀 것은 참으로 사람살기 좋은 도시라는 점이다. 잘 정비된 도로망 때문에 출·퇴근 시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되고, 주말에 교외로 나들이 할 때에도 교통체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도심 곳곳이 숲으로 덮여 있고, 3대 하천이 도심의 젖줄이 되고, 도심에서 그 다지 멀지 않은 곳에 의미 있는 공원들이 자리 잡고 있어 도시면서도 도시답지 않은 아름다움이 넘쳐난다. 이러한 도시의 인프라는 우리나라의 다른 도시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대전에 대해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훌륭한 하드웨어의 이면에 있어야 할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계획도시인 대전에 존재하는 여러 하드웨어가 그 존재의의를 잊은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다.

도시라는 공간을 설계할 때 있어야 할 ‘사람(Human)’에 관한 철학이 다소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인류가 도시를 건설해 문명을 구가할 때 추구한 것은 ‘편리성’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인간의 자연적 자유는 도시건설로 인해 심하게 침해됐다. 과거의 인간은 아무렇게 다니거나 행동을 해도 큰 제약이 없었는데, 현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전체의 이익을 위해 지켜야할 것이 너무도 많고 그것을 어겼을 경우 제재를 받는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그리고 공동의 생활체제 유지를 위해 우리는 태초의 인간적 자유를 스스로 박탈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이 도시의 주인은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목적을 위해 도시의 주인역할까지 내놓을 수는 없고, 사람이 주인이라는 의식은 도시설계의 기본적 철학이 돼야 한다. 그럴 때만이 자연적 자유를 일부 박탈당한 사람들이 도시의 주인으로서 행복해 질 수 있다.

예전에 필자가 체코의 프라하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필자에게 감동을 준 것은 프라하의 고풍스런 건물도 아니었고, 맛있는 음식도 아니었다. 그것은 걸어 다니면서 놀기에 너무 좋은 도시라는 것이었다. 차로보다도 더 넓은 인도를 따라 쉬엄쉬엄 걷다가 노상의 카페에서 맥주 한잔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구경하는 맛을 그곳에서 느꼈다. 바로 사람이 중심 되는 도시의 멋이다.

이러한 점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나 마인쯔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독일의 도심은 사람들이 완전하게 점령한 놀이터와 같았다. 차 없는 거리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다니다가 예쁜 가게에 들러 쇼핑도 하고, 터키사람의 노점에서 케밥도 먹고, 노천의 카페에서 슈바인학세(독일족발요리)에 맥주도 곁들인다. 그러다 곳곳에 있는 공원의 잔디에 몸을 뉘어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바로 사람이 사는 도시란 이런 것이라고 유럽의 도시들은 아주 쉽게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도심의 인프라가 제일 잘 됐다는 대전은 어떠한가? 대전 역시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사람 중심의 도시라기보다는 자동차가 도심을 점령한 자동차 중심의 도시이다. 도심의 도로망이 너무 잘 돼 있어서 오히려 사람들은 자동차를 피해 어렵게 도심을 다녀야 하고, 시내 곳곳에 공원이 많기는 하지만 시민들이 잘 이용하지 않아 관상용으로 전락한 곳이 태반이다.

도시의 주인인 사람에게 도시를 다시 내어 주기 위해 자동차도로를 과감히 없애고 넓은 인도와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흩어져 있는 공원들을 오버브릿지로 연결해 도심 전체를 거대한 클러스터 공원으로 만들고, 그곳에서 한바탕 놀이판과 먹거리판을 만들면 어떨까? 사람이 두 다리를 이용하여 도심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때 도심의 상권이 더 활성화되고 도시는 사람의 향기로 충만해져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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