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정 국립대전현충원장

역사를 통해 중단 없는 개혁은 발전의 동인이다.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려운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개혁’ 일 것이다. 개혁은 절대다수가 혜택을 보는데도 개혁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극소수가 결사 항전 자세로 반대를 하다 보니 번번이 좌절된다.

개혁의 요소는 일반적으로 밑으로부터 제공되곤 한다. 명예와 권력, 부를 갖고 있는 상층보다는 불이익을 받는 계층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 개혁의 궁극적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정착된 경조사 관련 문제의 근본적 개혁은 현실적 요소를 고려해 보면 가진 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계층이 발 벗고 나서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하다.

십여 년 전에 정부에서 공직사회에 경조사 개혁에 관한 일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경조사 관련 사항을 유관 기관 등에 공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사무관급 이상으로 하다가 반발이 일자 과장급 이상, 또다시 국장급으로, 아마도 1급 이상까지 상향 조정되었다가 그 역시 흐지부지되어 불과 몇 달 만에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고착화된 경조사 부조금 문제는 지극히 후진적인 것으로 선진화 과정에서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첫째 일부에서는 품앗이라고 말하지만 아마도 하위 계층에선 어느 정도 맞을 수 있어도 상층부는 거의 관련성이 희박하다. 흔히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경조사를 통해 억대 이상 들어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지갑에서 나간 돈이 2000만~3000만 원이 될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7000만~8000만 원 내지 그 이상은 거의 불로소득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민주화된 선진국이라면 소득 있는 곳에 반드시 세금이 따른다. 그러나 몇 십만 원도 아니고, 가진 자들에게는 최소 몇 천만 원에서 억대 이상의 부조금에 세금 한 푼 안낸다는 것이 제대로 된 사회에서 있을 수 있다고 보는가. 반드시 개혁대상이다.

셋째 부정부패의 온상 역할을 한다. 자녀 결혼과 부모 및 친지들의 애사 기회를 틈타 상식선을 훨씬 뛰어 넘는 돈을 기부해 힘 있는 자에게 ‘빽’을 담보로 하거나 가까운 미래 ‘보험’을 들어 놓는다.

경조관련 부조금 문제가 극복된다면 하위 계층이 가장 수혜자임에도 이런 제도의 문제점을 언급하면 그들이 생사를 걸다시피 반대를 한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으로 돈의 가장 큰 절대적 수혜자인 가진 자들은 표정관리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곤 한다. 내놓고 반대를 못하는 입장에서 하위 계층에서 온몸으로 방패막이를 해 주니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기에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외부 과시형으로 전락된 경조 관련 금전 문제는 가진 자인 위로부터 그러한 돈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하며, 단 한 푼까지도 정직하게 신고해 정당히 세금을 내는 등 당연한 자정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내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경구 가운데 하나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돈은 가장 계량화된 지표인데 세상에 공짜 돈은 한 푼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인간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혼사와 애사라고 하지만 정감이 흐르는 축하와 위로 차원을 넘어서 돈이 매개체가 되어 정의가 왜곡된 상황과 우리의 과제인 선진화를 지향하는 길에 현재의 경조사 부조금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야 할 개혁 0순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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