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 대전사랑시민협의회 회장

▲ 이샹윤 대전사랑시민협의회 회장이 "대전 150만 시민들이 고향에 대한 좋은 기억ㄱ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하고 자랑할 수 있는 자긍심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대전사랑시민협의회 활동에 전력하겠다" 라고 밝히고 있다. 정재훈기자 jprime@cctoday.co.kr

“대전시가 지향하는 세계를 향한 희망의 도시, 시민이 행복한 도시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대전사랑시민협의회는 시의 목표가 최대한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협력 지원할 것 입니다.”

대전사랑시민협의회는 시민과 시정을 위한 단체다. 즉, 시가 정책을 기획·입안하는 두뇌 역할을 수행한다면 대전사랑시민협의회는 전후방을 막론하고, 실제적 행동으로 정책적 방향을 지원하는 단체다.

특히 이런 시민협의회는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대전이 유일하다. 이에 따라 시민협의회 창립과 운영을 계획하는 타 시·도의 벤치마킹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대전사랑시민협의회에는 각종 시민단체를 비롯 교육기관, 상공회의소 등 굵직한 120개의 단체에 30여만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전시민의 다섯 명 중 한 명은 대전사랑시민협의회에 가입돼 있는 셈이다. 민관협치의 관심과 효율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이상윤 대전사랑시민협의회 회장에게 민·관협치의 의미와 대전사랑시민협의회의 미래에 대해 들어본다.

-우선 대전사랑시민협의회의 목적과 역할은.

“대전사랑시민협의회는 전국에서 유일한 시민협의체이다. 대전시새마을회, 한국자유총연맹대전시지회, 대한적십자사대전·충남지사, 대전시자원봉사연합회 등 크고 작은 단체가 가입돼 있다. 목적은 애향심을 바탕으로 시민역량을 결집하는 등 자발적으로 살기 좋은 대전을 건설키 위해 설립됐다. 특히 민관 협치 활성화를 통한 지방자치발전 활동에 역점을 두고 있다. 실제 매년 1회 주민참여예산학교를 운영해 예산편성과정에 대한 참여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또 옴부즈맨제도 활성화를 통해 주민의 권익보호와 방안마련에 전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예비 사회적 기업인 그린&타슈 자전거 사업단을 성장시켜 일자리 창출과 자전거 타기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아울러 생활쓰레기 발생량 저감과 재활용량 늘이기 운동 등 ‘쓰레기 제로 대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민관 협치의 구심점이다. 시민단체 활동 이력은.

“시민단체 활동은 처음이지만 비슷한 활동은 많이 했다. 국제로타리 활동을 하며 제3세계 젊은이들을 위한 문화평화 운동을 전개했다. 한국 측 대표로 필리핀을 선택했다. 이유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을 도운 경험이 있는 우방국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988년 필리핀 국립대학에 12학점 학국어교육과정을 개설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수확했다. 필리핀은 제2의 고향이다. 당시 사회가 너무 안타까워 밥을 먹는 자체가 사치라고 느꼈다. 10개월 동안 다양한 문화 활동을 추진했다. 필리핀 사회의 이면을 많이 목격하며 그 사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발현됐다. 이후 대학교 총장이 되면서 당시 필리핀 교육부 장관의 요청을 받고 IT 교수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를 통해 석사학위 70명, 박사학회 15명을 배출했다. 또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북한 쌀 보내기 운동도 추진했다.”

-역사 문제도 많이 다룬 것으로 안다.

“기독교학교 연맹을 구성했다. 연명에는 한국과 일본의 중·고등학교 300개교 등이 참여해 공동으로 연합체를 구성한 것이다. 이 중 역사연구회를 설립했다. 당시 일본교과서 등과 관련한 역사왜곡 문제가 크게 대두된 시절이다. 종교적 접근을 통한 이해와 협력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실제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엉킨 역사왜곡문제를 민족 간의 시각으로 풀기는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기독교학교에서 해답을 도출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측 대표로 역사왜곡 분야를 조사·연구했다. 조목조목 분석해 부교재도 만들고 세미나를 열었다. 물론 우익단체 등이 세미나를 저지하는 등 반발이 거셌지만 굽히지 않았다. 소책자를 만들어 기독교계 교육기관의 역사교사들에게 분배했다. 원하는 곳이 있으면 나눠주고 싶다. 보람 있었고 역사에 남을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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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식의 계기는.

“조부의 영향이 매우 컸다. 특히 역사왜곡 문제는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조부는 일본 메이지대 법대에서 수학하다가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에 들어왔다. 조부는 일본인들의 좋은 점과 나쁜 점, 한국을 핍박하는 문제 등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조부는 3·1운동 당시 농촌에서 활동을 하며 학업을 중단했다. 학적조회를 하니 아직까지 중퇴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도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했다. 교육계에 있어 역사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 기독교 신앙과의 인연은.

“집안은 본래 유교다. 또 교육가 집안이다. 조부는 교육가가 되라고 말했다. 본래 법조계에서 일을 하고 싶었지만 교육가의 길을 걷게 됐다. 중학교 3학년 때 크리스마스 연극 구경을 갔다가 기독교에 귀의하게 됐다. 집안과의 갈등이 대단했다. 특히 시골에서는 힘든 문제였다. 하지만 이후 동생과 부모님이 교회에 가게되면서 조부도 기독교신앙을 이해했다. 가정 전체가 기독교가정이 된 것이다. 요즘 기독교인들은 너무 교리적, 교회 중심적으로 살아간다. 때문에 교회와 삶이 서로 연결이 안 된다. 교회무대도 중요하지만 삶의 무대도 중요한 것이다. 똑같이 중요하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살면 연계와 화합이 된다.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면 사회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대학 교수로 진로를 선택한 이유는.

“처음에는 대학 교수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중·고등학교 교사를 권유했다. 공주사범대학을 나와 교사활동을 시작했다. 어느 날 공문 하나를 받았다. 내용은 영어교사는 돈을 안 들이고 해외유학을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곧장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유능한 영어교사를 생각하며 공부를 했다. 대학을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대학 당시 지도교수가 대학 행을 권유했다. 처음 원광사범대학에서 정식교수로 근무했다. 이어 숭전대학교(현 한남대) 영문과 교수가 됐다.”

-대학에 대한 시각과 문제점은.

“대학자체가 구조적으로 변해야한다. 현재 대학구조를 두고는 선진국가 진입이 불가능하다. 가장 바꾸기 힘든 분야가 대학과 종교다. 대학이 수십 년간 철밥통처럼 단단하게 조직됐다. 대학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구조를 바꾸기는 어려운 문제다. 적어도 학교의 책임자가 강인한 개혁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한남대 총장으로 있으며 한남대가 설립된 목적, 정체성을 그대로 실현하는데 중점을 뒀다. 한남대는 남장로교회의 신도들이 목화나 밀을 판 헌금을 가지고 설립된 대학이다. 이런 본래의 설립정신을 기리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

-대전사랑시민협의회의 향후 운영방향은.

“대전시가 지향하는 것이 세계를 향한 희망의 도시, 시민이 행복한 도시이다. 시가 목표로 설정한 것이 실현 될 수 있을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협력하고 지원하겠다. 특히 대전 150만 시민들이 고향에 대한 좋은 기억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랑할 수 있는 자긍심이 필요하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대전사랑시민협의회 활동에 전력하겠다. 대전사랑시민협의회에 소속된 큰 단체만 120개 단체다. 모든 단체들이 소통을 통해 결집력을 극대화하겠다. 혹시 시민들이 말 못하는 부분들을 전달하겠다. 시민들의 여론을 주도하고 조정하겠다.” 정리 = 서희철 기자 seeker@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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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회장 프로필

△1941년 12월 11일 충남 서산 출생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충남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문학석사
△뉴질랜드빅토리아대학교 영어교육 Diploma
△한남대학교 총장 역임
△한국해비타드 대전지회 부이사장 역임
△대통령직속 충청권광역경제개발위원(현)
△한국 YMCA연맹 충청협의회 상임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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