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권 변호사

서울에서 기차타고 내려오는 길에 옛날 생각이 나서 대전역에서 대흥동까지 걸어보았다. 이 지역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전의 명실상부한 중심지였는데, 둔산 신도시 건설로 인해 침체의 길로 접어들어 재개발이 필요하다는 말들이 많이 나오는 곳이다.

대전역 광장을 지나 중앙시장 쪽으로 가려는데 정차된 차들과 광장 중심을 지나는 차들로 인해 곡예를 부리듯 간신히 그곳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횡단보도가 바로 없어 중앙시장에 직접 갈 수 없었고, 그 곳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의 횡단보도를 통해 중앙시장에 어렵게 갈 수 있었다. 예전 대학시절 대전에 내려오면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러 자주 갔던 그 곳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맛과 멋에서 뒤지지 않는 순대집과 냉면집들이 지금도 여전히 즐비했지만, 그 때만큼 사람들로 붐비지는 않았다. 시장 하늘에 지붕을 씌우고, 상점간판도 정비하고 돌로 바닥을 까는 등 상당히 신경을 쓴 것 같은데 사람들의 발길이 북적거리지는 않았다. 중앙시장을 나와 목척교를 보았는데 예전에 있던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가 홀연히 사라지고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하천공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청계천이 지극히 인공적인 하천복원이었다면 목척교 복원은 아주 자연스럽고 소박한 하천복원이어서 마치 시골집앞 개울이 도심에서 살아난 듯 했다. 그런데 이 소박하고 아름다운 하천공원에 사람들은 고작 10여 명이 있었다.

목척교를 지나 젊음의 거리라는 으능정이 거리에 들어서니 또 다른 매력이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서울 명동보다 더 환하고 밝고 명랑한 느낌이 으능정이 거리 곳곳에서 묻어나있었다. 중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즐겁게 거리를 활보했고, 군데군데 보이는 노점 떡볶이집들이 나의 발길을 잡아끌었다. 으능정이 거리를 지나 대흥동으로 넘어가려는데 도무지 횡단보도를 찾을 수 없었다. 중앙로역 지하상가를 통하든지, 아니면 한 200여 미터 떨어진 대흥동 성당 쪽의 횡단보도를 이용해야만 했다. 이미 도심의 주인 자리를 자동차에게 내어준 딱한 존재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힘겹게 횡단보도를 건너 대흥동에 들어섰다. 대흥동 문화의 거리는 또 다른 신선한 전통의 매력을 나에게 보냈다. 색깔 있는 도로, 커다란 주차장이 있는 공원, 각양각색으로 예쁘게 꾸민 식당과 찻집 그리고 술집들이 마치 아름다운 드라마 세트장에 온 듯한 착각과 편안함을 주었다.

예전에 독일에서 머물 때 느꼈던 것인데, 독일의 도심은 사람들이 주인되는 세상이었다. 자동차들은 도심 외곽의 주차장에 서 있고, 정말 필요한 대중교통 수단들만 도심을 간간히 지나다니는 가운데 사람과 자전거들이 도심을 구석구석 안방처럼 누비고 다닌다. 가히 보행자 천국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도심이 우리보다 빼어나게 예쁘거나 장엄한 것은 아닌데, 그들은 도심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마치 시민들은 놀이터처럼 도심을 걷다가 쉬다가, 마음에 드는 집에 들려 맥주도 마시고 밥도 먹고 쇼핑도 한다. 그 곳에서는 보행자의 자유를 박해할 위해요소가 별로 없고, 대부분의 교통시설들이 자동차가 아닌 사람들 편의로 이뤄져 있다.

대전의 구도심인 중앙시장, 으능정이 거리 그리고 대흥동 문화의 거리는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문화적·예술적·상업적 놀이터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 훌륭한 인프라를 살리려는 노력을 등한시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도심 재개발이란 것이 모든 것을 밀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짓는 것은 결코 아니며, 기존의 문화적 가치를 최대한 살리면서 사람중심 철학을 바탕으로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대전역을 통해 대구, 김천, 천안 등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대전에 와서, 중앙시장에서 순대국 먹고 목척교에서 발 담그고 으능정이 거리에서 놀다가 대흥동에서 술한잔 하는 풍경이 상상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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