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가능성 인수없이 보험료만 받을 순 없다"

사채업자가 소유권을 취득하지 않은 채 담보로 넘겨받은 차량을 제3자에게 넘겼고, 제3자가 원래 소유주 명의로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면 이 보험은 유효한 것일까?

보험계약자가 원 소유주인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중대과실이 보험사 측에 있기 때문에 계약 자체는 유효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청주지법 민사1단독 정선오 판사는 15일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상 정부보장사업 대행자인 D보험사가 "유족에게 대신 지급한 1억원을 달라"며 차량 운전자 김모(25)씨와 H보험사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에서 "피고들은 연대해 1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차량 원 소유주인 이모씨는 2002년 8월 사채업자에게 500만원을 빌리면서 시가 2천만원짜리 승용차를 담보로 제공했다.

당시 이씨는 사채업자에게 차량 양도에 필요한 모든 서류와 열쇠를 넘겨준 뒤 차량에 대한 포괄적 관리권 및 사용을 허락했다.

사채업자는 소유권을 넘겨받는 정산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이 차량을 팔았고 이를 구입한 제3자는 2009년 4월 원 소유주 이씨를 계약자로 하는 종합보험을 H보험사와 체결했다.

이 차량은 다시 김씨에게 넘어갔고, 김씨가 지난해 1월 초 청주시 흥덕구의 한 도로에서 가로수를 들이받는 바람에 동승자 박모씨가 사망했으나 H보험사는 "성명불상자는 보험계약 체결 대리권이 없으므로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유족의 보험금 청구를 거절했다.

그러나 정 판사는 판결문에서 "H보험사는 성명불상자의 신분을 확인하지 않고 그가 제시한 자동차등록증만 갖고 보험계약을 체결한 중대한 과실이 있다"며 "보험사에 중대과실이 있는 경우 계약의 해지를 허용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보험계약의 효력을 부정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면 보험사는 위험을 전혀 인수하지 않은 채 보험료만 취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즉, 보험계약자 신원을 확인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인지 알면서도 계약을 체결한 뒤 사고가 나지 않으면 보험료를 자기가 갖고, 사고가 나면 계약 무효를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이상한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정 판사는 또 "손해보험의 경우 상법상 피보험자의 동의가 없더라도 보험계약의 효력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면서 "이 사건에서 피보험자인 원 소유주 이씨의 동의가 없었더라도 보험계약의 효력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판시했다.

k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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