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오르세 미술관 내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파리 만국박람회때 에펠탑이 세워졌다.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강행했던 이 조형물은 그 후 120여 년이 넘는 동안 프랑스, 유럽의 랜드마크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그로부터 11년 후 파리에서는 또 한 번의 만국박람회가 열린다. 국제세계박람회기구(BIE)같은 기구가 한참 뒤인 1928년 프랑스의 주도로 개설되었으니 그 이전 강대국들의 박람회를 둘러싼 경쟁과 갈등은 대단했을 것이다. 급물살을 탔던 기계문명의 성과와 즐거움을 만끽하며 이른바 '벨 에포크(황금시대)'를 구가하던 20세기 초입,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는 당시 문물을 집대성하면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온갖 문명의 총체를 선보였다.

관람객 수송을 위하여 그즈음 준공된 오르세 역에서는 오를레앙 행 열차가 드나들었는데 당시만 해도 최신시설을 갖춘 첨단역사였다. 그러나 그 이후 열차의 길이가 점점 늘어나면서 마침내 오르세 역은 장대열차를 수용할 수 없어 역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하고 오랫동안 별 쓸모없이 방치되었다.

이 공간을 다름 아닌 미술관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참으로 탁월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파리 중심지 세느강 바로 옆 교통의 요지인데다가 천장과 건물 앞뒤 벽면이 유리로 되어있어 미술관의 핵심인 채광문제는 자연히 해결되었다. 대대적인 공사를 마치고 1986년 재탄생한 오르세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센터와 함께 고대에서 19세기 중반, 19세기 중반부터 1차 세계대전, 그 이후 현대미술작품 전시로 교통정리를 하면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세군데 공간이 미술사를 분담하는 3박자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아시아인들에게 특히 인기 높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거의 이곳에 집결되어 루브르의 규모와 지루함에 지치거나 퐁피두센터 현대미술이 난해한 사람들에게 즐거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후 발전소를 개조한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같은 유사사례가 잇따르면서 이제 '리모델링 문화공간'은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

머지않아 내포 신도시로 이전하는 지금의 충남도청 건물도 결국은 문화공간으로의 활용이 대세가 아닐까. 대전시립박물관, 시립미술관 분관, 문화체험공간, 시민문화예술대학, 예술창작공간 같이 발상에 따라 얼마든지 유용한 용도가 나올 법도 하다. 다만 그 아까운 부지를 밀어붙이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다는 토목만능 발상만 아니라면.

<논설위원·문학평론가·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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