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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모래바람 부는 허허벌판이었던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명성과 특성화된 이미지 구축과정은 세계 도시역사상 손꼽힐만하다. 이제 라스베이거스는 시 재정이나 주민들의 만족도, 또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와서 살고 싶어 하는 선망도 측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라스베이거스=도박, 퇴폐향락, 범죄' 같은 고정관념의 등식 역시 여전하여 이런 선입견으로 인한 유·무형의 손실과 부작용이 적지 않다.

거기에 미국 다른 지역에 비해 가히 초특급으로 빠르고 저렴하게 이루어지는 결혼, 이혼 절차와 관련 행정지원 시스템도 라스베이거스의 문화코드를 이룬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결혼은 공인 하에 부부로 결합한다는 고전적 의미를 넘어 이벤트, 이야깃거리, 다른 경우와 비교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프랭크 시내트라, 폴 뉴먼, 엘비스 프레슬리 그리고 데미 무어 같은 이름 있는 연예인들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요란하게 결혼식을 올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도 그들의 유명세를 올리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얼마 전 서태지 이지아씨도 1997년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객실 수 5000개가 넘는 초특급 호텔부터 모텔, 여관급까지 다양한 숙박시설만큼이나 결혼식을 올리는 공간의 규모며 종류도 다양하다. 전통적인 혼례 이외에도 특색 있는 경우로 소규모 '웨딩 채플'이 꼽힌다. 즉석에서 신청하고 홀이 비어있으면 곧바로 결혼식이 가능하다. 전속 주례는 검은 가운을 입고 장소에서 자못 진지, 근엄하게 의식을 진행한다. 그야말로 상투적인 주례사,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혼인선서 (신랑신부는 묻는 말에 "I do"라는 말만 몇 번 반복하면 된다), 녹음된 축가 그리고 준비해온 예물이 있다면 교환하는 것으로 식은 끝난다. 양가 부모나 하객은 없어도 비디오 촬영은 혼인증빙품목. 총비용은 199달러로부터 옵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시 당국에 결혼신고서를 제출하면 저렴한 수수료를 받고 신속하게 처리해 준다. 어느 웨딩 채플을 구경하던 중 들이닥친 커플과 주례의 강권으로 꼼짝없이 유일한 하객 겸 증인노릇을 하게 된 적도 있었다.

우리 정서로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결혼풍습이긴 하지만 연간 20만 쌍 가까운 남녀가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니 그런대로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청바지 티셔츠를 입고 하객 없는 좁은 공간에서 치른 결혼의 진정성, 유효기간은 그 누구도 알 수 없겠다.

<논설위원·문학평론가·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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