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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 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얼룩배기 황소가 헤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 비인 밭에 밤 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흙에서 자란 내 마음 /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전설 바다에 /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후략) - 정지용 '향수'

박인수, 이동원 듀엣의 절묘한 화음으로 더 유명해진 정지용(1902~1950) 시인의 '향수'는 시(詩)란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고 바로 우리들 자신의 삶과 기억에 맞닿아 있는 서술임을 보여준다. 평범한 어휘에서도 쓰임새와 정황에 따라 새로운 맛과 깊은 뜻이 우러나옴을 언어의 연금술사 정지용 시인은 보여주었다. 옥천읍 하계리, 생가와 맞닿은 정지용 문학관에서 바로 옆을 흐르는 실개천을 바라보면 '향수'의 실물감과 감동은 더 커진다.

6·25때 월북했다는 이유로 1988년 해금될 때까지 정지용 문학은 '정O용', '정X용' 이라는 익명표기가 상징하듯 40년 가까이 공백으로 남아있었다. 납북으로 밝혀졌다지만 걸출한 시인을 냉전 이데올로기 체제 아래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것이다.

속내 이야기를 하면서도 절제된 표현과 회화적 이미지로 독자로 하여금 무궁무진한 상상과 추억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그의 시는 지금처럼 감정과잉 시대, 모든 것을 미주알고주알 뱉어내야 만족하는 부박한 진술의 시대에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영세한 지방자치단체 살림에도 문학관을 중심으로 문화벨트를 조성해 지역이 낳은 대시인을 선양하는 옥천군의 문화의지가 돋보인다. 진작에 건물을 지어놓고도 운영주체를 찾지 못해 여태껏 허송세월해온 대전문학관은 어떻게 꾸며져 고장의 문인들을 되새기게 할까. <논설위원·문학평론가·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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