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위기의 카이스트 … 첫 휴강 맞은 교정 가보니
총학, 무한경쟁 성토… 대자보엔 “우린 불행” 패닉상태

▲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이 11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학처장혁신위원회의를 마치고 교수회관에서 원동혁 비서실장(왼쪽)과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심각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정재훈기자 jprime@cctoday.co.kr

“이제까지 수재로 살았는데 학점 경쟁에서 밀려나면 패배자가 될 수 밖에 없어요. 충격과 자괴감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KAIST가 잇따른 학생들의 자살 충격에 휘청이고 있다.

국내 최고의 영재들이 모인다는 KAIST. ‘곧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것’이라는 KAIST에서 연이어 수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11일 오전 KAIST의 겉모습은 여느 봄날 교정처럼 따뜻하고 평온한 모습이지만, 이날 KAIST 각 학과는 휴강을 하고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한 교수와 학생간의 간담회가 진행됐다.

강의실과 교정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학생들을 통해 KAIST 개교 이래 최악의 혼란상태를 엿들을 수 있었다.

이날 학생들은 징벌적 등록금제 등 서남표 총장의 교육철학이 잇따른 자살사태의 원인 아니냐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교내 연못 근처에서 만난 재학생 박 모(20) 씨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KAIST만의 환경이 이번 자살을 불러 온 것 같다”며 “아침이 오는 줄도 모르고 밀린 과제와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휴학생들이 부러울 정도로 학교생활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학생 최 모(21) 씨는 “기숙사에 살기 때문에 한 때 한 달 내내 학교 안에서만 생활한 적도 있다”며 “3.0이하의 학점을 받으면 등록금을 내야하는 과태료 같은 제도는 학생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의 학생 자살 사태에 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 끝을 흐렸다.

학생회관 앞에서는 학교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뚜렷하게 들렸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는 대자보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학교정책은 학생들의 힘겨운 학교생활을 짐작케 했다.

이날 오후가 되면서 학교는 점점 들썩이기 시작했다. 총학생회는 학교 본관 앞에서 ‘총장의 경쟁위주 제도개혁에 대해 호소문’을 낭독했고, 교수와의 대화를 위해 단체로 움직이는 학생들은 서둘러 집합 장소로 움직였다.

총학은 이날 성명을 통해 "교육개혁가로 불리는 서 총장은 KAIST의 교육정책을 바꿨고, 우리는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가 되어가고 있다"며 "바로 옆 친구가 힘들어해도 과제 때문에 삼십 분도 낼 수 없고, 숨 죄어 오는 무한경쟁에 등 떼밀려 하루하루 과제를 틀어막기에 바쁜 '톱니바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서 총장이 만든 틀에 맞춰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학문의 길을 이어나가는 ‘생각하는 존재'"라며 "서 총장의 교육 철학은 우리를 숨 막히는 막다른 길로 몰아가는 만큼 서 총장은 상처받은 학우와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또 ‘근조(謹弔)’ 리본을 단 교수들은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갖는 등 어수선한 모습을 이어갔다.

KAIST 전체가 어찌할지를 모르는 구성원들의 바쁜 움직임 속에 개교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한 교수는 “지난 1월 첫 학생이 학사경고를 받은 뒤 자살한 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며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정신적인 나약함으로 몰아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승동 기자 dong79@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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