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본사 회장

역대 대통령의 동상이나 흉상이 공공장소에 세워지지 못하는 나라는 우리 나라 밖에 없을 것 같다. 이승만, 박정희, 모든 전직 대통령들의 동상을 세웠다가 밧줄로 쓸어트리거나 훼손을 당했고 여타 대통령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미국처럼 퇴임하는 대통령들이 도서관이나 기념관을 세우는 것 역시 우리는 볼 수가 없다. 가령 우리 나라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도서관을 짓겠다고 해 보자.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한때 인터넷 유모어 게시판에 역대 대통령들을 시니컬하게 표현한 글들이 유행이었다. 그 가운데 자동차 운전에 비유한 인상적인 것이 하나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국제운전면허, 박정희 전 대통령은 총알택시, 최규하 전 대통령은 대리운전,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난폭운전, 노태우 전 대통령은 초보운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무면허 운전, 김대중 대통령도 좋은 별명이 붙을리 없다. 또 앞으로 나올 대통령은 어떤 별명이 붙여질지 모른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들이 폄하되고 있는 것에 대해 작가 서기원(徐基源)씨는 우리 민족의 유목민적 원류에서 흥미있는 해석을 내린 바 있다.

중국, 일본, 한국 세 나라 가운데 유독히 우리는 인류학적으로 몽골계통에 속하기 때문에 유목민족의 특별한 생활인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 질서를 지키기보다 자유분방하고, 풀이 많은 곳으로 이끄는 지도자 한 사람에 의존하며, 밤이 되면 천막을 치고 노래와 춤판을 신명나게 벌이는 유목민족, 그래서 풀밭(초원)을 잘못 찾거나 무리가 곤경에 처하면 가차없이 그 지도자를 처단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스포츠만 해도 축구나 야구할 것 없이 선수와 감독이 어제까지 영웅 대접을 받다가 하루 아침에 역적 취급을 받는 일이 자주 있는 것도 그런 때문인지 모른다. 시간을 기다리거나 패배의 원인을 따지지 않고 오직 승리가 아니면 무조건 책임을 덮어 씌우는 것이다.

또한 유목민족의 특성은 지도자가 정상적인 논리와 방법으로 무리를 이끌지 않고 무당처럼 신바람을 일으키는 것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 신바람은 잘만 일으키면 징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했듯이 폭발적 힘을 갖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경제성장도 그런 신바람에 큰 힘을 받았다. 선거도 바람이 조금은 있어야 흥미가 있다.

그러나 이렇듯 바람에만 선거를 의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바람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97년 IMF 외환위기와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 모두를 뒤집어 쓰듯 종말은 매우 비극적일 수 밖에 없다.

이제 불과 3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도 후보자들이든 유권자든 무당같은 신바람을 갈구하는 것 같다. 그 바람에는 지역바람, 고무풍선같은 공약바람도 있고 행정수도 이전 논쟁, 북한 핵 개발 같은 '이상한 바람'도 있다.

TV 선거광고 방송이나 유세 심지어 로고송까지 차분히 유권자들을 설득해 이끌어 가려는 것이 아니라 감성을 자극하고 바람을?일으켜 표를 얻으려 한다. 유권자들도 합리적 판단을 구하고 고민하기 보다 바람에 자극받고 싶어한다. 유목민족의 원류가 되살아 나는 것일까? 이러다가 15대 대선 때처럼 부채 탕감, 아파트 분양가 50% 인하 같은 공약이 나올지 모른다. 아니 이미 이와 같은 '바람공약'이 우리를 현기증나게 하고 있다.

그래서는 다음 대통령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인데… 우리 가슴을 식히자. 그리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국가운명을 이끌 지도자를 고르자. 그래서 이번에 선출된 대통령은 훗날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고 동상도 세울 수 있게 하자. 그것은 이제 우리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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