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천 김유신사당 벚꽃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 - 이형기 '낙화' 전문

열일곱 나이로, 아마도 우리 현대문학사상 최연소 문단 등단 기록을 세운 이형기 시인(1933~2005)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시구는 오래 남아 개화와 낙화라는 자연의 순환과정을 새로운 눈으로 성찰하면서 삶과 인간을 노래하고 있다.

만남과 사랑을 개화(開花), 헤어짐은 낙화(落花)에 견주면서 자연의 섭리와 삶의 진실을 결합하여 가슴에 와 닿는 절창을 선사한다. 슬프지만 꽃은 떨어져 열매를 맺고 더 높은 영혼의 성숙을 기약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왜 이렇게 새삼스럽게 다가올까. 엽낙귀근(葉落歸根), 모든 영광과 위세는 일시적인 꽃이며 화려해 보이는 자태일 뿐 결국은 떨어져 뿌리와 흙으로 돌아간다는 당위가 그러하다. 결별이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첫 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는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중, 후반부의 섬세한 서정의 리듬보다 첫 부분 이 선언적인 언사의 힘으로 무게중심이 잡힌다.

자리에 연연하며 손에 쥔 권력을 놓기 아쉬워 하다가 결국 쓸쓸하고 초라한 뒷모습을 보이고 마는 세속의 욕심과 미련을 향하여 이형기 시인은 나지막하게 권면한다. 조금 아쉽다 싶을 때 돌아서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겠는가라고. 칭송과 역량의 절정의 순간 미련 없이 훌훌 떠나는 결단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즈음 부끄럽게 이 자리 저 자리 꿰차고 있거나 그러다가 모양새 없이 등 떠밀려 초라하게 물러나는 여러 정경을 보며 이 첫 구절을 떠올린다.

<논설위원, 문학평론가·한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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