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토일]통영 한산도 제승당

▲ 제승당 충무사에 모셔진 이순신 장군의 영정.

'한국의 나폴리' 통영은 꽤나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통영에서 뱃길로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한산도는 자칫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분명 한 번쯤 들어봤지만 그것이 국사책이었는지 소설책이었는지 어사무사한 곳이다. 한산도가 이러하니 그 안의 제승당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산도는 또 그 안의 제승당은 그냥 지나칠 만한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스러져가는 조국을 온몸으로 지켜낸 수군의 혼과 계절을 오롯이 품은 풍경이 눈부시게 빛나는 그 섬은 그렇게 모른 척 지나쳐서는 안 되는 곳이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제승당(한산도)행 배를 타고 남해로 나가니 갈매기가 가장 먼저 찾았다. 갈매기의 출현은 배웅일까 마중일까. 푸르른 바다와 더 푸른 바람, 그리고 바닷내음을 가르며 나는 새가 배를 감쌌다. 바다가 좋은 이유는 사연이 깊어서다. 바다가 나에게 묻는지 내가 바다에게 답을 구하는지 모르겠지만 늘 사연이 깊다. 그렇게 생각을 흩뿌리며 20~30여분을 달리면 거북등대(한산대첩지가 이곳임을 알리기 위해 1963년 12월 세워졌다)가 맞이하는 제승당 선착장에 닿는다.

한산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시작이자 세계적인 해전으로 손꼽히는 한산대첩의 배경이다. 한산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을 처음 사용한 전투로, 진주·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다. 한산대첩은 일본의 대륙정벌 야욕을 꺾은 결정적 계기인 동시에 이순신 장군이 단순히 충성심과 자부심으로 싸운 옛 장수가 아닌 히딩크(비교할 바 못되지만) 못지않은 전략가이자 명장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명장 이순신이 삼도 수군을 지휘하기 위해 지은 곳이 바로 제승당이다. 선착장에서 바다와 해송 숲 사이로 난 길을 걷다보면 나졸 둘이 지키는 제승당 입구가 나타난다. (이 길은 굉장히 맑다. 공기도 맑고 물도 맑고 바람도 맑다. 그래서 그저 걷다보면 엄숙한 표정의 나졸들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이곳이 피 튀기는 전장이었다는 것을 잊게 된다.) 제승당은 임진왜란 당시 3년8개월여 동안 조선삼도수군통제영으로 사용된 곳으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총 1491일 가운데 1029일이 이곳에서 쓰였다. '승리를 만든다'라는 뜻이 담긴 제승당(制勝堂)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원균의 참패로 소실되기도 했다. 그 후 1739년 제107대 통제사 조경이 유허비를 세웠고, 200여년이 더 지난 1975년 8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화됐다. 지금의 제승당을 만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의 위업을 기리고 살신구국의 높으신 뜻을 후손만대에 전하고자' 정화사업을 지시했다. 그 분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지만 제승당 정화사업 하나 만큼은 잘한 것도 같다.

제승당(이곳은 제승당·수루·한산정·충무사 등으로 이뤄지지만 통틀어 제승당이라고 부른다)에 들어서면서 아니 뱃전에서 한산도가 보이면서부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수루'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하는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가(閑山島歌)는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시조다. 격전지에서 조국의 존망을 걱정하는 장수의 마음까진 알지 못한다 해도 외딴 곳에서 만나는 익숙한 것은 반갑기 그지없다. 수루에 오르니 한산 앞바다가 펼쳐졌다. 사실 수루는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한 곳이지 시조를 읊기 위한 곳은 아닌 것이다. 수루 위에 바다를 남기고 제승당으로 향했다. 제승당은 충무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건물로 내부에는 다섯 폭의 해전도와 현자총통, 지자총통, 거북선 모형 등이 전시돼 있다.

제승당 다음으로 가야할 곳은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다. 충무사의 영정은 종이품통제사 관복차림으로 1978년 정형모 화백이 그렸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두 번씩 제향을 올린다. 또 많은 이들이 수시로 이곳에서 소원을 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로또 당첨? 행복? 건강? 금연? 나 역시 장군님께 적당한 청탁을 하고 제승당의 마지막 코스인 한산정으로 향했다. 당시의 활터인 한산정은 전국에서 활터와 과녁 사이(145m)에 바다를 낀 유일한 곳이며, 조정에서만 과거를 보던 관례를 깨고 (이순신 장군이 장계를 올려)무과시험을 치른 곳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은 밀물, 썰물을 이용한 해전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고자 이곳에 활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뜻을 가진 '시나브로'란 말이 있다. 한산도는 그 안의 제승당은 그런 곳이다. 대학시절 어느 방학 홀로 그곳을 찾았을 때, 선착장에서 제승당으로 한 걸음씩 옮기는 사이,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나에게 '인상적인' 장소가 됐다. 화려한 승리의 역사와 표현조차 어려운 눈부신 풍경이 함께 하는 남해의 섬은 스물한 살의 학생에게도 서른둘의 기자에게도 또 그곳을 찾을 그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곳'이다.

통영=노진호 기자 windlake@cctoday.co.kr

?

△통영-제승당(한산도) 간 여객선은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10월에서 2월 사이는 오후 5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있다. 여객운임은 4700원이며 차량운임(승용차 기준)은 8000~1만1500원이다. 제승당 관람료는 200~1000원으로 저렴하다.

?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