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라보의 연인

지나치기 쉬운 공간 한 모퉁이, 평범해 보이는 구조물이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을까. 비슷비슷해 보이면서도 결코 같지 않은 개성과 매력, 흥미를 자아내게 만드는 비결은 거기에 담긴 '이야기'의 힘에 있다.

세계 곳곳 이름 있는 명소에는 그런 까닭에 각기 독특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이즈음 문화콘텐츠의 핵심요소로 부각되는 스토리텔링은 사실 오래전부터 위력을 발휘해오고 있다. 다만 이즈음 미디어를 통하여 그리고 경제적 부가가치가 새롭게 인식되고 있을 따름이다.

파리 센 강에 놓인 교량 중 지명도가 높은 다리로 퐁 뇌프와 미라보 다리를 꼽는다. 세워진 후 400년이 지나 센 강에서 가장 오랜 구조물인 퐁 뇌프 (발음상의 편리함으로 '퐁 네프'라 불린다)는 이름 그대로 번역하면 역설적으로 '새로운 다리(新橋)'인데 1991년 레오 카락스 감독의 영화 '퐁 네프의 연인들'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명소로 이름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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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중간 중간 반원형 아치모양의 휴식공간이 있고 거듭되는 보수공사로 비교적 원형 그대로 보존되는 이 다리에 시력을 잃어가는 여류 화가와 떠돌이 곡예사의 사랑 이야기가 덧입혀지면서 연인들의 명소가 되었다. 허구의 이야기가 현존하는 실물에 인상 깊은 불멸의 스토리를 선사했다. 보수공사를 거쳤다지만 수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튼튼하고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16세기 당시 건축, 토목기술 역시 대단해 보인다.

퐁 뇌프가 영화로 유명세를 탔다면 미라보 다리는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로 이름을 얻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만 간다./ 기억해야만 하는가/ 기쁨은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시인 아폴리네르가 살던 오퇴이유 지역에서 예술가들의 집결지 몽파르나스를 가려면 이 다리를 건너야했다. 여류 화가 마리 로랑생과의 사랑이 실패로 끝나면서 시인은 미라보 다리 위에서 사랑의 허무함과 물결, 시간의 덧없는 흐름을 담담히 노래했다. 그저 그렇고 그런 다리가 한 세기동안 시 한편에 힘입어 문화명소로 군림한다.

오늘도 미라보 다리 위에서는 연인들의 짙은 입맞춤이 계속된다. 잃어버린 사랑을 노래했던 다리에서 연인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포옹할까. 시의 앞부분에서 드러난 허무함과는 달리 "…희망은 또 얼마나 격렬한가…"라는 뒷 시행처럼 삶을 향한 강렬한 의지를 그들은 다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논설위원·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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