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송(一松) 김동삼은 1878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1908년 고향에 협동학교를 세워 젊은인재를 키우다 한일합방이 되자 1911년 열혈청년을 거느리고 만주로 건너갔다.

그는 1931년 하얼빈에서 체포될 때까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던졌다. 만주벌에 바친 일송의 20년은 첫째가 독립운동, 둘째가 군관양성, 셋째가 재만주 동포의 민생안정과 권익옹호, 넷째가 교육이었다.

만주에 가서 그가 처음 한 일은 이시영, 이동녕 등과 경학사를 조직, 재만동포의 농지개척·생활안정계획과 신흥강습소(후에 신흥무관학교로 발전)설립이었다.

일송은 시종일관 일본군이 우글거리는 만주벌에서 무장항일투쟁을 고수한 ‘광야의 맹호’였다.

1918년 갈림성에서 김좌진 등과 ‘독립선언서’를 발표했으며 임듬해 3·1운동때 군정부를 조직했다.

1931년 하얼빈에서 붙잡혀 본국송환 당한 후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이날 옥사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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