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 김유정문학촌 작가 동상

낭만적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지며 덜컹거리는 열차의 진동이 애틋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경춘선 열차가 지난 연말 사라지고 광역전철이 달린다. 빨라진 운행시간과 번듯해진 역 건물에도 불구하고 마냥 아쉬움이 남는다. 청평, 대성리, 강촌, 가평역 같이 젊은이들의 M.T나 데이트 장소로 선호되었던 곳에서도 이제 예전의 운치나 정서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종착역 못 미쳐 신남역은 오래전 김유정(金裕貞)역으로 바뀌었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전국 역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이름을 역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역에서 3분 거리 김유정 문학촌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요절한 천재작가를 기리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99칸짜리 부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형이 가산을 탕진하면서 폐병, 치질 등 여러 질병에 시달리는 동안 국악인 박녹주 여사를 향한 짝사랑도 실패에 그치면서 결국 천재작가 김유정은 30여 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고 1937년 스물아홉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유정 문학촌의 중심건물인 기념관에 들어서면 궁핍한 삶을 호소하며 친구 안필승에게 보낸 편지구절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필승아, 내가 돈 백원을 만들어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해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 되고, 흥미 있는 걸로 두어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역하여,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주마…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필승아, 나눈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 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신병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조차 자유롭지 못한 작가는 닭 서른 마리와 살모사, 구렁이 열 마리를 고아먹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친구에게 탐정소설 번역주선을 부탁하였다. 작가는 이 편지를 보내고 나서 얼마 후 닭도 고아먹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930년대 후반 불운한 작가의 슬픈 삶이 가슴을 친다.

그로부터 70여년, 문화복지를 이야기하고 생활 가까이 문화예술이 여러 모습으로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만 같은 이즈음 궁핍과 외로움 속에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최고은 작가가 쓸쓸하게 웃는 모습과 유난히 진하게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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