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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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狂歌亂舞(33)


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어젯밤에 과인이 만취하여 크게 실수했으니 임금의 패덕(敗德)이 이보다 더할 수 없고, 이보다 더 사필(史筆)에 누(累)가 되는 일이 어디 있겠소? 군신간의 예의를 잃었으니 장차 경연에 무슨 낯으로 나아가겠소?"

왕은 진정으로 뉘우치고 있는 듯하였다. 그렇다고 연회장에서 같이 추태를 부린 주제에 임금의 잘못을 지적한다는 것은 대간으로서는 못할 일이었다.

"전하, 제왕이 재상들을 그렇게 접대하는 것이 무엇이 그르겠사옵니까? 전하께서는 누누이 실수하신 일을 말씀하시오나 신 등 역시 모두 대취하여 자신들의 잘못도 기억하지 못하온데 어찌 전하의 실수를 알겠나이까? 다만 과음하신 것뿐이옵고 이렇다 할 실수는 없으셨던 것으로 기억하옵니다. 국사를 다룰 때에야 한결같이 엄하고 공경하는 예의를 지켜야겠지만 군신간에 즐거이 술을 마시고 노는 자리에서까지 그럴 것은 없사옵니다. 성종대왕께서도 때때로 사사로이 편전에서 대신들을 소대하시고 정전에서 잔치를 베푸신 일도 있었사온데 수상(首相)이던 정인지가 아뢰기를 군신간에 의당히 엄한 예절로 접해야 하오나 한결같이 엄한 예절로만 할 수 없는 것이요, 역시 온화하고 격의없이 대할 때도 있어야 한다고 하였사옵니다. 성종대왕께서는 술이 취하시면 정전에서도 일어나 춤을 추시며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함께 일어나 춤을 추게 하셨던 것이옵니다. 어젯밤 일은 조금도 성덕(聖德)에 누가 되지 않사옵니다."

성준이 간곡하게 위안의 말을 하였다.

대사헌 이자건도 가만 있을 수 없어 한마디 하였다.

"전하, 어젯밤 일은 근래에 보고 듣지 못한 흐뭇한 일이옵니다. 전하께서 위로 양전(兩殿=두 대비)마마를 모시고 아래로 대신과 시종, 대간들을 불러 중심을 보이시며 성의로 대하셨사온데, 무슨 허물이 있었겠나이까? 참으로 제왕의 넓고 크신 도량을 보이신 것이옵니다."

"경들의 말이 그러하니 오히려 부끄럽소. 취중에 실수한 일은 다 기억할 수 없으나 김감을 성균관지사에, 한형윤을 이조참판에 제수한다고 한 말이 기억나오. 옛날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장난 삼아 오동나무 잎으로 홀(笏) 모양을 만들어 아우 우에게 주면서 너를 봉(封)한다고 했는데 주공이 그 말을 듣고 천자(天子)는 농담이 있을 수 없다 하여 우를 당(唐)에 봉하였다는 고사가 있지 않소?"

왕이 취중의 실수를 자책한다고 하면서 취중의 말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무슨 심사였을까.

제왕무치(帝王無恥).

제왕에게는 아무리 수치스런 일이라도 나무랄 수 없다는 것은 절대군주 시대의 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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