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됐다.

출근길 차량들로 붐비는 아침 7시40분쯤, 성수대교 북단 5번째와 6번째 교각 사이 상판 50여m가 "꽝" 소리와 함께 북쪽 상판 이음새가 먼저 끊어지고 이어 남쪽 상판이 떨어져 나갔다.

버스와 승용차 6대가 상판과 함께 강물로 추락하고 북쪽으로 달리던 시내버스는 끊긴 다리 끝부분에 뒷바퀴가 걸리면서 한바퀴 빙글 돌아 떨어졌다.

사고현장은 비바람 속에 휴지처럼 구겨진 추락차량과 피투성이가 된 희생자들로 뒤범벅돼 있었고 바닥과 천장이 닿을 정도로 찌그러진 버스에서 학생들의 책가방, 안경, 볼펜, 도시락들이 비죽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이날 사고로 무학여중고생 9명을 포함, 모두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

성수대교 참사는 단순히 콘크리트 건조물 하나가 무너진 붕괴사고가 아니었다. 다리와 함께 온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고, 나라가 함께 무너져 내렸으며 한국적 성장신화의 부끄러운 이면을 드러내는 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1997년 7월 3일, 32명의 귀중한 인명을 앗아갔던 성수대교가 붕괴 2년8개월 만에 재개통됐다. "트러스 부재중량 7천4백4t에 지진 강도 5에도 견디고…" 라는 자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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