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건설 이야기(8) 지역대표 향토기업 우뚝

창사 20주년을 넘어서 외형과 내실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진 계룡건설은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적극적으로 환원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장학재단을 설립하게 된다.

이전까지 불규칙하게 선심성으로 베풀던 사회 환원을 보다 체계적이고 정기적으로 진행한다는 구상에서 계룡장학재단은 출발했다.

92년 2월 기본계획을 수립한 이후 그해 11월 이인구 회장 개인과 계룡건설 법인이 5억원의 출연금을 만들어 장학재단 설립의 단초가 마련됐다.

12월에는 설립허가를 받고 등기를 내 장학재단은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 지난 92년 설립한 계룡장학재단은 지금까지 12년간 총 9억 6882만원의 장학금을 6242명에게 전달했다.
"장학재단 설립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야. 기금을 유지하며 이자수익만으로 사업을 벌여야 하거든. 더구나 다른 법인과 달리 파산할 경우 기금은 한 푼도 회수할 수가 없어. 모두 국가로 귀속되게 돼 있지. 그렇지만 장학사업은 꼭 하고 싶던 사업이었고 지금도 가장 뿌듯하게 여기는 사업이야. 장학생 선발과 관련해서 가끔 청탁이 접수되기도 하지만 그건 재단의 성격을 몰라서 하는 얘기야. 장학생 선발은 100% 학교장에게 위임돼 있어. 간혹 청탁이 접수되면, 로비를 하려면 교장 선생님한테 하라고 대답하지."

계룡장학재단의 이사장인 이인구 회장은 장학생 선발의 공정성을 설명하면서 장학사업에 갖고 있는 애정과 관심을 내보였다.

최초 5억원으로 시작한 계룡장학재단은 설립 12년째를 맞는 지금 모두 31억원의 자본금을 가진 법인으로 성장해 있다.

6회에 걸쳐 추가로 자본금이 출연된 성과다.

지금까지 12년간 운영되며 재단이 지급한 장학금 총액은 9억 6882만원으로 수혜인원은 6242명에 달한다.

"현재 36억원인 자금 규모를 2006년까지 50억원으로 확대할 계획이야. 그리고 장학금을 지원하는 기능 외에도 각종 학술행사와 문화사업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갈 구상도 갖고 있지. 일본 내 백제역사를 탐방하는 행사와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가 고승이 된 여대남 선생에 대한 제사를 500년 만에 현지에서 지내는 행사를 이미 진행했어. 또 광개토대왕비 복제비를 독립기념관에 건립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야. 올해 6월 이전에는 이 사업도 마무리될 수 있을 것 같아."

이인구 회장은 장학재단 사업 영역을 다각화할 것임을 밝히며, 광개토대왕비 복제비 건립사업을 올 상반기 중 마무리짓겠다는 뜻을 비쳤다.

금년 6월 중국 소주에서 개최될 유네스코 총회에서 광개토대왕비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예정으로, 등록이 확정되면 이후 복제비 건립사업은 유네스코의 인가를 얻어 추진해야 하고 그만큼 절차가 복잡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은 유네스코 총회가 개최되는 6월 이전에 복제비 건립사업을 끝마친다는 계획이다.

광개토대왕비 복제사업은 중국 현지에서 같은 재질의 석재를 들여와 실물과 같은 크기로 완벽하게 복원한다는 목표로 현재 추진 중이다.

장학재단이 설립된 이듬해인 93년 이인구 회장은 기업공개(상장)를 결심하게 된다.

지난 88년 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기업활동과 의정활동을 겸해 오던 이 회장은 올바른 의정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기업에서 손을 떼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기업공개를 결심하게 된다.

"정치를 하면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더군. 기업을 공개하면 투명성과 공평성을 확보할 수 있고 직접적인 경영에서 손을 떼도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임원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지. 굳이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기업공개를 할 필요성이 없다는 의견들이었어. 하지만 임원들 모두 결국은 내 뜻에 따라주었고 정해진 일정대로 기업공개를 위한 절차를 밟아 나갈 수 있었지."

▲ 계룡건설은 기업의 투명성과 공평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공개를 결정하게 된다. 계룡건설의 상장은 지역 건설사로서 최초이자 향토기업으로는 4번째 개가였다. 사진은 상장 첫 날 증권거래소를 찾은 이원보 회장.
이 회장은 자신의 국회 등원이 계룡건설을 상장기업으로 만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93년 장외거래 등록을 통해 기업공개 첫 단추를 꿴 후 계룡건설은 착실하게 상장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94년 4월 기업을 공개키로 한 사내 결정을 공시하고 대우증권을 주간 증권사로 선정했다.

6월 안건회계법인이 외부감사인으로 지정됐고 유가증권 분석과 수시감사, 신용평가 등의 일정이 진행됐다.

이듬해 11월 이사회에서 신주발행이 승인되고 곧바로 증권감독원으로부터도 기업공개가 승인됐다.

한달 뒤 공개청약을 거쳐 주금납부가 완료됐고 이듬해인 96년 1월 계룡건설 주식은 상장을 이뤄내게 된다.

충청권 기업으로는 충청은행과 우성사료, 동양백화점에 이어 4번째였다.

기업공개를 결심하고 만 26개월 만에 이루어진 개가였다.

주금을 완납하고 사실상의 상장을 이뤄낸 이후 1월 17일 이인구 회장은 그룹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며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되고, 전문경영인인 이원보씨가 그룹 회장으로 올라서 경영의 최일선에 나서게 된다.

계룡건설은 더 이상 개인 이인구의 회사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국민의 회사라는 인식을 주주들을 포함한 일반인들에게 보다 강하게 심어 주고자 하는 의도였다.

"상장을 위해서는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지.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모든 비축토지를 매각했고, 8개이던 계열사를 3개로 축소했어. 모든 일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지. 90년 이미 모든 사채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상장이 이루어진 96년에는 모든 은행권 부채도 상환했어. 이때부터 계룡은 무차입 경영을 하는 알짜배기 회사로 거듭나기 시작한 거야. 전국 건설사 중 도급 순위는 랭킹 25위에 올라 있지만 신용도는 항상 4위권이야. 외형은 몰라도 내실에서는 어느 회사와 견주어도 자신 있는 구조를 갖췄다니까."

재무구조의 건전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이 회장의 입가와 눈가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만큼 계룡건설의 건전한 재무구조에 자신 있다는 표현이었다.

자발적으로 회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상장을 준비했던 까닭에 계룡건설은 이후 잇달아 불어닥친 금융실명제와 국가 외환위기사태(IMF) 시기를 별다른 고통 없이 넘길 수 있었다.

지금도 계룡건설의 주식은 전국 건설사 중 4번째로 높은 주가를 형성하고 있고,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주주들에게 고율의 배당이 이루어지는 알짜 주식이라는 반석 같은 믿음엔 변함이 없다.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적극적으로 환원하기 위해 설립된 계룡장학재단의 활동과 기업의 투명성과 공평성 확보를 위해 일구어낸 기업공개를 통해 지역민들은 계룡건설이 충청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이란 공감대를 나누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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