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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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狂歌亂舞(29)

파랑, 빨강, 노랑, 검정, 흰색 등 오색가지 옷을 입은 무동들이 신상(神像)같은 처용의 탈을 쓰고 오방(五方)으로 벌려서 주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그 사이사이에 기생들이 처용가와 봉황음(鳳凰吟)을 불렀다.

처용무를 보면 미치는 것이 왕의 버릇이었다. 구경만으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왕이었다.

"서울 밝은 달에 밤드리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 보곤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해였고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다마는 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왕은 손수 북을 치며 고래고래 악을 쓰듯 노래를 불렀다. 처용무가 끝나고 무동들이 흩어지자 왕은 신하들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요구하였다.

"영상이 먼저 한 곡 부르시오."

취흥이 도도한 영의정 성준이 쉰 듯한 탁성(濁聲)으로 읊조렸다.

"언충신(言忠信) 행독경(行篤敬)하고 그른 일 아니하면

내 몸에 해 없고 남 아니 무이나니

행하고 여력이 있거든 학문조차 하리라."

"허허, 영상은 주석에서 만취해 가지고도 점잖은 소리만 하는구려. 그게 뉘 시조요?"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의 시조라 하옵니다."

"독곡 성석린이라?"

"예, 국초(國初)에 영의정을 지내고 태조건원릉신도비(太祖健元陵神道碑)의 필적을 남긴 독곡 선생 말씀이옵니다."

"아, 그렇소?"

그러나 왕은 건성으로 물어본 것뿐이었다.

다음에 지명을 받은 신하가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를 불렀다.

"강호(江湖)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

독요계변(獨遙溪邊)에 금린어(錦鱗漁)이 안주로다.

이 몸이 한가하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왕이 종장(終章)이 마음에 들었던지, 첫절만 부르고 마는 것을 사절(四節)까지 다 부르게 하였다. 거기까지도 아직은 풍류의 멋있는 놀음이었으나 왕이 신하들에게 춤을 추라고 강요하면서부터 연회장은 난장판처럼 되어갔다.

"경들도 모두 일어서서 춤을 추오. 어서들 일어서오!"

왕은 쑥스러워서 꾸물거리거나 취해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꾸짖었다.

"경은 어명을 거역할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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