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우

써클, 아나타주아, 여섯 개의 시선, 칠판, 노보, 내가 여자가 된 날, 영매, 비디오를 보는 남자…. 극장가의 황금기라는 지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끼고 대전지역을 살짝 비껴서 상영된, 소위 '예술 영화'들이다.

어쩌다 갑자기 삶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싶거나 한번쯤 예술적인 사치를 부려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 때,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역시 영화 포스터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주변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이러한 기대를 무참히 부숴 버린다.

간만에 영화관람이나 할까 해서 극장을 찾으면 대부분 걸려 있는 포스터는 깨고 부수거나 질낮은 농담으로 도배된 흥행위주의 영화들뿐이다. 가끔 예술성과 상업성을 겸비한 영화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개봉 직후 며칠 동안은 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

이런 흥행이 보장된 몇몇 영화들만을 상영하기 때문에 이 극장엘 가도, 저 극장엘 가도,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마다 극장 앞에는 표를 구하지 못한 연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문화산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닌 듯싶다.

한국영화 시장은 규모에 있어서는 프랑스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수는 1/5 수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적다고 한다. 세계 어느 곳보다 붐비는 극장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천편일률적인 영화들에 의해 우리나라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문화적 편식을 강요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전의 경우에는 타 지역에 비해 더 열악한 상황이라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

나는 20년이 넘게 대전에 적을 두고 있지만, 대부분의 예술영화는 개봉관에서 스크린이 내려지고 몇 개월 후 비디오로 출시된 다음에야 볼 수 있는 것으로 언제부터인가 아예 포기하고 살게 되었다.

대전 시민들의 문화적 안목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동안 대전시민들에 의해 성장해 온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측면에서 상영관 중 하나쯤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관객이 좀 적게 들더라도, 조금 손해보는 느낌이 들더라도, 질높은 예술영화들을 정기적으로 상영해서 대전의 문화적 자부심을 높이는 데 일조해 준다면 대전시민과 기업이 함께 성장해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할 수 있지 않을까.

명실상부한 중부권의 행정, 경제, 교통의 중심지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대전이 이제는 '문화의 중심'으로서도 타 지역의 모범으로 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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