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준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금융위기가 몰아닥친 지도 2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 경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인한 쓰나미는 언제든 몰려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앞으로 실물부문에서 활력이 회복되지 않으면 그때는 속수무책이라는 뜻일 것이다.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지구촌에서는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라 하여 미국식 국가경영 시스템을 모방하기 위한 경주가 치열했다. 우리라고 그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시스템은 경쟁논리와 계약자유에 바탕을 둔 신자유주의적 법과 제도를 의미한다. 여기에서는 비용과 편익 원칙을 앞세워 시장에 대한 규제를 없애고, 경쟁우위를 갖는 시장참가자의 탐욕도 계약자유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보호된다. 강한 자는 더욱 강하게, 약한 자는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즉, 사회의 양극화를 통해 국가 발전을 꾀하는 것이 미국식 시스템의 본질이다. 미국의 금융위기도 바로 여기에 그 원인이 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사회는 양극화가 너무 심화되고 있는 그런 형국이다. 현 정권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는 실지회복 선언으로 좌우 이념의 양극화에 불을 댕겼다. 복지를 경시하고 성장 우위를 지향하는 국가정책은 국민들의 삶을 양극화시키고 있다.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금융산업은 비대해지는 산업간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중소기업은 활력을 잃고 대기업은 번창하며, 내수는 취약하고 수출은 번창하는 시장의 양극화도 커지고 있다. 서울과 지방간 교육의 불균형이 커지고, 정규직 보다는 비정규직이 기본이 되는 현상이 구조화되고 있다. 국가정책의 효과가 극단을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것 뿐인가. 서울은 비대해지고 지방은 공동화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세종시 수정안을 실현하는 것은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 나아가 국가발전의 양극화에 불을 지피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보는 양극화는 그것이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잃어버린 10년과 비교하면 특별히 다를 것도 없다. 오늘의 양극화는 신자유주의 이념을 국가정책의 기반으로 삼았던 그 잃어버린 10년 동안 이미 태동하고 구조화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과거 정권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국민의 복지 향상을 위해 투자를 확대한 것이나,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기로 한 점 등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현 정권은 과거 정권에서 비롯된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치유하는 데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도리이자 정도이다. 이래야만 잃어버린 10년의 회복이란 슬로건도 그 정치적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사회의 양극화는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땜질식 처방 보다는 근원적 해결을 위해 국가경영 시스템을 재편하는 데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미국도 자신의 시스템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하고, 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 않은가. '90년대부터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은 미국식 시스템을 도입하여 경제 활력을 회복하려 했지만 아직도 장기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성장동력은 모든 국민의 결집된 힘으로부터 나온다. 그 결집력을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이제 좌우 이념의 분리를 조장하는 행태는 사라져야 하고, 시장을 지배하는 자들의 절제된 지혜가 절실하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큰 시야에서 헌법상 지역균형발전정신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복지와 성장이 균형을 이루는 정책을 추구해야 하고, 저축에 열을 올리는 대기업의 투자를 끌어내 국민이 활력을 쏟을 터전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양극화의 저주로 나타나서는 아니 된다. 이 모든 것이 다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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