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대전·충남 출신 법조인’ 전국 일간지 첫 전수조사]④ 지역변호사 생존대책

대전의 A변호사는 수 년째 굵직한 형사 사건을 거의 구경하질 못했다.

국선변호인제도와 불구속 재판의 확대 등으로 사선변호사를 찾는 피의자나 피고인이 크게 줄어든 게 원인이다.

A변호사는 “일부 돈되는 형사사건들도 판·검사 출신의 전관변호사나 서울 소재 대형로펌들이 수임해 가는 경우가 많다”며 “얼마 되지 않는 민사사건으로 경쟁하다 보니 지역 변호사들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대전지법·고법에서 잇따라 진행된 지역 유력인사에 대한 형사소송 건은 불황의 몸살을 앓고 있는 대전·충남 법조계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직전 대전·충남교육감 선거과정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후보들에 대해 각각 검사장 출신과 율사이자 전직 국회의원이 변호를 맡는 등 서울 대형로펌들이 총동원됐다.

이들이 서울 로펌에 사건을 의뢰하며 들어간 수임비만 각각 수천만 원에 달했다는 후문이다.

반면 최근 대전지법 1심에서 벌금형을 받은 B씨의 사례는 정반대의 경우.

고령의 B씨는 전직 의원으로 사회적 명예와 부를 갖췄지만 무료 국선변호사를 선임, 자신의 형사사건에 대한 소송에 나섰다.

대전의 모 변호사는 “대전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180여 명 가운데 사무실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는 30%에도 못미친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중견 법조인은 “의뢰인들 입장에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서울지역 로펌을 찾는 경우가 있다”며 “그러나 전관예우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매우 엄격해져 의뢰인의 기대가 충족할지는 확실히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청사와 특허법원, 계룡대 입지에 따른 수요 창출 효과도 기대치를 밑돌고 있다.

계룡대를 둘러싼 소송에서 일부 군법무관 출신들이 나름대로 선전할 뿐, 특허와 정부청사 관련 소송 등은 관계 기관들이 서울의 대형로펌에 의뢰하는 일이 잦아 대전 법조계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게 관련업계의 전언이다.

일각에선 공공기관의 서울지역 로펌 선호현상에 대해 패소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명분을 얻는 면피용이란 시각도 흘러나오고 있다.

관계 기관의 그릇된 인식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 법조계 일각에선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않을 경우 지역내 자생적인 법률 인프라마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더욱이 법률시장 개방과 오는 2012년부터 로스쿨 졸업생들이 쏟아져 나올 예정이어서 위기 타개를 위한 다양한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대전·충남 법조계에 대한 자성론도 빼놓을 수 없다.

패소할 것을 뻔히 알면서 무리하게 사건을 수임하는 ‘불량 변호사’ 등과 ‘악질 브로커’들을 퇴출하지 않는 한 지역 법률시장의 신뢰와 경쟁력, 건전성 확보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또 고소득 직업군이란 자기만족에만 매몰됐을 뿐 타 시·도의 선진법률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등 체질 개선을 위한 공동 논의도 구두선에만 머물렀다는 지적이다.

대전의 법조계 중견 인사는 “지역을 대표할만한 법조인과 차세대 법조인들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생존경쟁이란 이유로 법조계 내부에 뿌리깊게 박힌 개인주의 풍토부터 걷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끝> 서이석·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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