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 흩날리는 주말 오후, 계룡산에 오른다. 산 속을 걷는다. 산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바람이 싸늘하게 스치지만 살포시 쌓인 눈이 마음을 포근하게 감싼다. 숲의 평화로움이 심신을 지배한다. 숲이 '치유의 힘'을 가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최근 산림청은 숲이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입증했다.

산림청과 서울성모병원은 112명을 대상으로 경기도의 한 숲에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주의집중력이 향상되고 스트레스와 우울증상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박동 수도 호전돼 심혈관계와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는 효과도 나타났다. 피톤치드와 같은 식물 정유의 향기, 새들의 소리, 숲 속의 고요나 바람소리,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살, 높은 산소농도 속 음이온, 숲의 색채, 기분좋은 습기 등 숲의 여러 기능들이 오감을 자극해 면역력과 자기치유능력을 높여준다.

그러한 숲이 도심에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자연숲이면 더더욱 좋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숲이어도 우리 주위에 있다면 고마워할 일이다. 대전 신도심이라 일컫는 둔산동·만년동 일대엔 한밭수목원, 정부청사 도시숲 등이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속속들이 생겨난 도시숲들로 인해 대전은 엑스포과학공원~한밭수목원~정부청사 도시숲 그리고 기존에 있던 샘머리공원과 보라매공원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녹지 축을 갖게 됐다. '녹색도시'란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한밭수목원은 올 한해 시민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대전의 대표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계절마다 자연의 새로움을 보여주고 도시에 지친 사람들에게 여유와 휴식을 주는 친구가 되었다. 어떤 이에겐 가슴 설레는 데이트장소로, 어떤 이에겐 활기찬 운동코스로, 또 어떤 이에겐 사색과 명상의 산책코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한밭수목원의 인기비결은 도심에서 보기 드문 숲을 가졌다는 것과 시민들을 한껏 품어주는 쉼터의 매력일 것이다. 개방시간도 한 몫을 한다. 한밭수목원 인기가 높아지자 대전시는 오후 6시(10월~5월)와 밤 9시(6~9월)까지만 개방하다가 밤 10시와 밤 12시까지로 연장했다. 개방시간이 늘어나자 시간에 쫓겼던 시민들은 늦은 시간에도 여유롭게 수목원을 즐길 수 있게 됐고 더더욱 많은 시민들이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찾는 명소가 된 것이다.

한밭수목원은 '빨간 날'이 없다. 사람들에게 행복과 휴식을 주기 위해 하루 있던 휴원일까지 반납했다. 휴원일 없애고 개방시간 늘리면 시민들은 자주 찾을 수 있어 더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수목원을 혹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밤이면 각종 전등불빛과 소음에 시달리고 사람들 손길에 생채기를 입어도 하루를 쉴 수가 없다. 나무와 식물들은 생장활동에 저해를 받을 우려도 크다. 휴식같은 친구 수목원. 그 친구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소중한 공간일수록 더 아끼고 멀리 앞날을 내다보며 지켜가야할 의무와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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