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우 정치부 차장

대전지법 천안지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갑생 판사는 지난 2007년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법정 태도를 통해 드러나는 피고인들의 지역색을 구분한 적이 있다.

그는 "경상도 출신은 비교적 합의가 잘 된다고 해요. 목소리가 커서 조정이 잘 안 될 것 같은 데도 막상 합의에 들어가면 잘 된다고 합니다. 많은 판사가 '충청도 사람들은 말이 없으면서도 고집이 세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조정이나 화해가 잘 안 되는 편입니다. 열사의 고장다워요. 전라도 사람들은 관에 대한 경외심이 있다고 들었어요. 반면에 서울이나 수도권 사람들은 권리의식이 강해요. '내가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이 대단하다죠. 법정에서 소란 피우는 일이 빈번하고요. 또 공정한 재판인지를 엄청나게 따지고 판결에 대한 항의가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

정 판사는 충청도 사람들을 고집이 세다고 했다.

충남 보령 출신이었던 이문구(1941년~2003년) 씨는 자신의 소설 '우리동네'에서 충청도 사람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런 디서 살어두 짐작이 천리구 생각이 두 바퀴란다. 말 안 허면 속두 읎는 중 아네. 촌것이라구 업신여기다가는 불개미에 빤스 벗을 중 알어라. 위에서 시키는 것도 반을 빌구 반은 눌러도 들을지 말지 헌 게 촌사람들이여."

충청도 사람들은 고집이 센 데다가 의뭉스럽기까지 하다는 의미일 게다.

말은 안 해도 알 건 다 알고, 분명한 생각도 있다. 그러나 말이 없다고 해서 업신여겼다간 큰 코 다친다. 이것이 이문구가 표현한 충청사람이다.

얼마 전 충남 연기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했던 경북지역의 시민사회단체 대표 A씨는 이런 말을 했다.

"행정도시가 무산된다고 하고 충청민심이 흉흉하다고 하기에 올라오는 길에 지역을 유심히 돌아 봤지만 너무 평온하다. 경상도 같았으면 난리가 났고 지금쯤 외지사람들은 동네 분위기에 눌려 돌아다니지도 못할 겁니다."

물론 행정도시 문제가 경상도에서 벌어졌다면 A씨 말처럼 ‘난리’가 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행정도시 문제는 충청도에서 벌이지고 있다.

하지만 A씨는 충청도 기질을 잘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지금 충청도 방식대로 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정부 여당은 행정도시 건설을 백지화하기 위한 작업을 공식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충청도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고 결정하겠다는 단서조항을 붙이고 있다.

고집세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충청도의 여론을 얼마나 정확하게 수렴할지는 걱정이다. 충청도의 속내를 엉뚱하게 읽지나 않을지 우려스럽다.

이문구의 말처럼 ‘촌것이라구 업신여기다 불개미에 빤스 벗기’ 일보직전의 사태가 벌어지기 않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위에서 시키는 것도 반은 빌구 반을 눌러도 들을지 말지 헌 게 (충청도) 촌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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