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 ?
?
? ?
?

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南柯一夢(45)

임금을 비롯한 왕족들 외에는 궁중에서 죽을 수 없다는 것이 궁중의 법도였다.

궁녀들은 평생을 궁중에서 살지만 궁중에서 죽을 권리는 없었다.

창덕궁에는 요금문(曜金門)이라는 문이 있었다. 금호문(金虎門)에서 원서동(苑西洞)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 궁 밖으로 출입할 수 있게 만든 요금문은 환자나 다 죽게 된 사람이 나가는 문이었다.

요금문을 통해서 바깥으로 나간 궁녀는 질병가에 수용되어 치료를 받고 치유되면 다시 궁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간혹 늙은 상궁이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궁녀들은 쉬쉬하면서 교군을 불러 반신불수가 된 사람을 억지로 가마 안에 구겨박듯 밀어 넣고 요금문으로 내보내기도 하였다.

임신한 흥청도 병자 취급을 받아 요금문을 통해 나가서 질병가에 수용되었는데 해산을 하게 되면 즉시 왕명으로 영아를 생매장하는 것이 오작인(? 作人) 하나가 어명을 거역한 죄로 목이 달아난 사건이 있은 후로는 흥청이 아이를 낳는 족족 뺏어다 묻으니 어미의 울음소리와 갓난애의 울음소리가 처절하였다.

질병가 근처에 사는 백성들은 갓난애의 울음소리가 나면 몸서리를 치며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어느 여름날 오후였다.

오작인들이 한꺼번에 갓난애 서너 명을 강보에 싸서 들고 산기슭으로 올라갔다.

삽질하는 소리와 갓난애들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산밑 마을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오싹하게 만들었고, 상을 찌푸리고 귀를 막게 하였다.

난데없이 일진흑운(一陣黑雲)이 일고 하늘 한 쪽이 노랗게 물들더니 번갯불이 번쩍 번쩍하였다. 우르릉 꿍딱딱 딱따그르르 하고 연거푸 천둥이 요란하게 울고 천지가 캄캄해지며 비바람이 미친 듯이 휘몰아쳤다.

산기슭에서 들려오던 삽질 소리와 갓난애들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천둥소리와 비바람 소리에 묻혀버렸다.

미친 비바람은 낙락장송이라도 금방 쓰러뜨려 버릴 것처럼 날뛰고 폭우는 등잇물을 들어붓듯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날카로운 볼줄기가 캄캄한 하늘을 찢으며 어디엔가 벼락이 떨어지는 무서운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하늘이 무심치 않구나. 천인공노할 놈의 세상천지 개벽이나 되어라!"

"벼락을 때리려거든 임금이 있는 창덕궁 선정전 용마루나 폭삭 무너지게 때려라!"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