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충청지역 민주화 대부 송좌빈 선생이 본 ‘인간 김대중’

▲ 민주화 운동을 위해 40년 이상을 함께한 죽천 송좌빈 선생이 1985년 당시 도교동 자택에 연금된 사진을 보며 회고 하고 있다. 홍성후 기자 hippo@cctoday.co.kr
"우리는 그를 선생이라고 불렀다. 내 사상을 가지고 그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이 내 사상으로 돼 버렸다. 그는 선구자였다."

대전·충남지역 민주화 운동의 '대부(代父)'로 존경받고 있는 죽천(竹泉) 송좌빈(85·宋佐彬) 선생은 18일 서거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선생'이라고 불렀다.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 운동을 위해 40년 이상을 동지로 함께 싸워 온 송 선생은 "김 선생은 흔한 얘기로 몇 백 년 만에 한 명 나오는 위대한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송 선생은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와 민주 통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 한국 미래를 바라보던 선견지명을 뛰어넘는 인간애를 가진 인물로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인간 김대중’에 대한 잊지 못할 몇 가지 일화를 들려줬다.

1985년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김 전 대통령은 제12대 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한 후 그 해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해 8월 즈음 김 전 대통령 내외와 아들인 홍걸 씨, 측근 등 70여 명이 직접 송 선생의 대청호 주변 집을 방문, 가든파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이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의 평생 동지인 송 선생을 찾은 것이다. 송 선생은 "엄혹한 시절의 한 복판에서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함부로 일반 사람의 집에 갈 수도 없고, 오라는 사람도 없지만 유일하게 우리 집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즐겼다"고 회고했다.

1994년 12월 김 전 대통령은 "송 동지가 7남매를 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한 번도 장가보낸다는 초청장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송 선생의 가족 모두를 서울의 한 호텔로 초청했다.

김대중이라는 인물과 일면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탄압을 받아야 했던 시절, 모든 걸 감수하고 따뜻하게 맞아주던 송 선생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송 선생이 회고하는 또 하나의 ‘눈물 나는 장면’은 1980년 김 전 대통령이 전두환 신군부로부터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언도받고 청주교도소에 복역할 당시의 일이다.

이희호 여사와 아들 홍일 씨 그리고 송 선생이 한 달에 한 번만 허용되는 면회를 갔지만, 송 선생은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 다음달 이희호 여사에게 전달된 김 전 대통령의 봉함엽서(封緘葉書)에는 "대전의 송 동지가 여기까지 왔는데 만나지 못해 애석하다고 했다. 눈물이 나더라"라고 적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이나 미래 한국 사회에 대한 전망 등을 제한된 봉함엽서의 지면에 깨알 같은 글씨로 2만여 자를 써 매달 이희호 여사에게 전했다.

이후 봉함엽서는 '옥중서신'이란 제목의 한 권의 책으로 묶여져 출판됐고 송 선생은 재산을 털어 500여 부를 구입, 대전지역 지인들에게 배부했다.

송 선생은 "우리 역사에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처럼 존경받는 분들이 많지만 대한민국 건국 이후 존경할 분은 김대중 전 대통령 밖에 없다"며 "그 분의 정치적 소신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 인간애, 도전정신은 누구와도 견줄 수 없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그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많은 동지들은 시대를 앞서갔던 김대중이라는 위대한 인물을 통해 민주주의 한국을 건설하려고 희망을 갖고 싸워 온 것이다. 선생은 민주주의의 상징이었고 통로였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마침내 서거를 통해 민주주의의 영원한 상징으로 승화된 지금, 김 전 대통령과 함께 싸워왔던 모든 민주화 인사들은 “선생과 함께했던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값진 축복이었다”며 애도했다.

이선우 기자 swlyk@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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