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본사 회장

지난해 대전의 어느 공사장에서 관할 구청장을 비롯 다수의 관계자들이 기공식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꾸만 시간이 늦어졌다.

그러자 시공회사 간부가 내빈들께 양해를 구하는 인사말을 했다.

광주에서 고사 상에 놓을 돼지머리를 가져오는데 길이 막혀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공업체가 전라남도의 모 건설회사였다. 대전에서도 얼마든지 돼지머리를 구할 수 있고, 비용도 절약될 텐데 광주에서 수송해 오는 것이다. 공사장에 투입되는 주요 인부들까지도 그렇게 했다.

민속주로는 처음으로 제조, 판매를 허가받은 경상북도의 모 민속주 역시 이 지역민들의 끈질긴 애향심의 결과였다. 어찌나 지역 유지들이 국세청과 청와대 등을 좇아 다녔던지 정문 경비실 직원들조차 유지들의 얼굴을 훤히 알아볼 정도였다는 것이다.

민속주뿐 아니다. 지금도 영남이나 호남, 그리고 강원도 식당에 가서 소주를 찾으면 으레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소주를 내놓는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상식처럼 돼 있다. 대전지역의 우리 고장 소주 소비율이 42%인데 비해 경남·북, 전남은 그 지방 소주 소비율이 70~90%에 달하는 게 무엇을 말하는가. 술뿐 아니다. 지방신문이 가장 많이 읽혀지고 뿌리를 내리는 곳도 영남, 호남, 강원도 지방이다. 그곳의 신문이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보다 경쟁력이 있고 잘 나와서가 아니다. 맛이 좀 떨어져도(소주 맛은 큰 차이가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 지방 소주를 마시는 것과 같은 '지역 사랑'의 마음 때문이다.

최근 대전에서 국책은행의 책임자로 있던 어느 인사는 대전을 떠나면서 이런 충고를 했다.

"충청권을 이끄는 중심체가 없고 응집력이 약합니다."

충청도에서 그가 근무하는 동안 체득한 결론인 셈이다.

전라북도는 새만금사업을 환경운동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라북도의 미래를 건 사업으로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에 동의하여 100만명이나 서명했다는 것이다. 200만 인구 중 절반인 100만명이 서명했다니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국회의원은 100% 동참하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특별법 통과를 위한 충청권 국회의원 31명 가운데 서명을 하지 않은 국회의원이 8명이나 되고 있는 것과 너무 대조를 이룬다. 새만금사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갖는 것이 행정수도가 아닌가. 그런데도 이렇게 팔짱만 끼고 있는 국회의원이 많은 것은 우리 충청권의 응집력을 실감케 하는 것이다.

충청권은 타 지방에 비해 전망이 밝다.

포항, 울산, 구미, 부산 등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그동안의 산업벨트가 이제 도리 없이 그 축이 충청권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무관심으로 갖고 있는 좋은 여건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대덕밸리가 갈수록 쇠퇴하여 문을 닫고, 보따리를 싸는 곳이 늘어나는 게 그런 증거다. 타 지역 같으면 어떻게 하든 대덕밸리를 살려낼 것이다.

정부와 인천시는 2020년까지 202조원을 투입, 여의도의 70배나 되는 6300여만평 규모의 경제자유특구 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특히 송도에 미국회사와 합작하는 60층짜리 국제비즈니스센터, 테크노파크를 비롯한 첨단 IT 및 신소재 산업의 지식정보 산업단지는 우리의 대덕밸리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을 것이다. 보통일이 아니다.

이렇듯 좋은 여건을 가지고 계속 놓치다가는 충청권은 고속전철과 사방팔달의 편리한 교통망으로 오히려 수도권의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편리한 교통수단은 활용 여하에 따라 도움도 될 수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는 24일 있을 대전시의 '대전선언'이 지역사랑의 불을 지피고 새로운 응집력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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