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최남단 가고시마에서 1시간가량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지랑(知覽)이라는 지방에 '평화공원'이 있다.

정식 이름은 '지랑 특공평화회관'. 바로 이곳에 2차대전 때 그 악명 높던 가미가제(神風)특공대 기지가 있다. 남태평양에서 일본의 목을 점점 조여 오던 미군 함대를 향해 이곳에서 발진한 단발 비행기에 폭탄을 장전하고 젊은 조종사들이 미군 함대에 돌격, 자폭한 것. 요즘 회교도의 자살특공대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희생된 젊은이가 1036명. 이들 1036명 중에는 한국인도 여럿 있었다는 설명에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이곳엔 산화한 특공대원들의 영정과 이들이 사용하던 시계, 메모철, 조종복, 심지어 이들이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가족사진까지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출격에 앞서 쓴 혈서와 영내에서 팔씨름을 하며 여가를 즐기던 사진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육탄이 되어 사지로 달려가는 젊은이들의 얼굴이 어떻게 저렇듯 기쁘고 평화로울 수 있을까? 그렇게 일본의 군국주의 교육이 인간을 광신도로 만들 수 있었는가?

우리 일행을 안내하던 우스노미야 일본 참의원 의원은 공원에 세워진 평화의 종을 치며 평화를 기원했지만, 회관 내의 안내원은 방문자들에게 이 희생자들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평화보다는 왜 일본이 패망했는가에 더 악센트를 두고 설명하고 있었다.

2차대전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패전의 원인을 반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일본의 국가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 속에 8월 15일 각료들의 신사참배가 공공연히 이루어졌고, 심지어 요미우리신문은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된 A급 전범들은 일본 국내법으로는 '공무수행 중 사망한 것'이라고 해괴한 논리를 폈는가 하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휘관이 무능해 전쟁에서 진 것'이라며 일본 패전에 아쉬움을 표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우익의 목소리가 더욱 커져 가고 있는 것이 일본이다.

또 이곳 가까이에는 250년 전의 '무사저택' 즉, '사무라이'의 저택들이 보존돼 있는데 계급에 따라 그 집의 크기가 다르지만 원형 그대로 잘 관리되고 있었다. 이 역시 '쇼군(將軍)'시대, 그 '사무라이 문화'에 대한 향수로 일본인들의 발길이 끊어이질 않는다.

이처럼 일본은 어디를 가나 군사 우월주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국민들은 그 문화에 대한 향수를 매일 느끼며 살고 있다. 사실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세계가 군비를 축소하고 있는 추세인 데 반해 일본만이 군비 증강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사무라이의 정신적 향수가 이들 의 국민 정서에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일본은 공공사업비, 사회복지 예산은 삭감하면서도 국방 예산은 오히려 늘려 그 액수가 중국(420억불), 독일(279억불)보다 더 많은 453억불이나 되고 있으며 그 중 많은 부분을 첨단장비 구입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 일행 중 이인구 전 의원은 이와 같은 일본의 성향을 생각하면 일본이 다시 군사대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북한 김정일의 핵 카드는 일본으로 하여금 핵무장 구실을 주게 된다는 사실을 북한이 깨달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큰일이라고 개탄했다.

사실 일본에 있는 동안에도 일본 언론은 베이징 6자회담과 북한의 핵문제를 주요 뉴스로 계속 다루고 있었다.

우리 매스컴이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온통 북한 응원단에 관심을 갖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결국 대구 U대회는 북한의 의도대로 남한을 분열시키는 전술이 성공을 거두지 않았는가.

정말 우리는 강 건너에서 불구경하듯이북한과 일본을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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