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회장

못 사는 집은 바람 잘 날 없다고 한다. 그렇게 늘 시끄럽고 목소리가 담 밖으로 펴져 나가며 싸움 역시 잦다는 뜻이다.

뉴욕의 빈민 흑인들이 몰려 사는 '할렘가'에 시간당 2건씩의 총격사고가 발생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요즘 자민련을 보면 딱한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 충청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정당이기 때문일까.

국회의원 빌려오기에서부터 시작해 최근의 JP와 이인제(李仁濟) 총재권한대행의 충돌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자민련은 열 손가락도 안되는 의석을 가지고 바람 잘 날이 없다.

겉으로 나타난 JP와 이 대행의 충돌은 지난 9일 이 대행 측에서 JP를 모욕하는 책을 냈다는 것으로 이 대행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한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싸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고향이 모두 충남이라는 것 빼고는 도대체 두 사람의 판이한 정치인생이 한지붕 아래 동거를 하기에는 너무나 궁합이 맞지 않는다.

그런데다 이 대행이 자민련으로 개가(改嫁)를 하고서 국회의석을 늘려 주지도 못했고, 당 운영자금에 큰 기여도 못했다는 이야기다.

또한 고향만 논산이지 16대를 제외하고는 정치활동을 경기도에서 (13·14대 지역구 경기도 안양시) 해 왔고, 민선 도지사 역시 경기도에서 당선됐던 이 대행이 충청도 정치를 이끌어 갈 기수로는 정서적 문제가 있다. 또한 97년 경선불복에 이어 지난해 민주당 탈당 등이 정치적 멍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민련은 이 대행을 '왕따'시켜 버리고, 이한동(李漢東) 전 총리나 심대평(沈大平) 충남지사를 내세우려 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번의 '당직자 일괄 총사퇴'라는 친위 쿠데타를 감행하기에 이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새 얼굴을 끌어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자민련의 고민이 있다. 이한동 전 총리를 다시 끌어들인다고 충청도 사람들이 얼마나 반가워하고 국민들에게 생동감을 줄 수 있을까?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로 되돌릴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심 지사가 내년 총선에서의 붐 조성을 위한 유일한 카드지만 심 지사 자신이 과연 이 불투명한 진흙탕 정치판에 뛰어들어 십자가를 져 줄 것인가? 심 지사로서는 정말 십자가다.

최근 필자와의 대화에서도 심 지사는 마음을 비운 담담한 자세로 개혁세력의 러브콜 등 세간에 나도는 이런 저런 말들을 단호히 부인하며 지금으로서는 오로지 천신만고 끝에 얻어 낸 계룡시를 건설하는 등 도정에만 마음을 쏟겠다고 했다.

따라서 이 대행이 총재제를 폐지하고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는 자민련이 살기 위해서는 1인 보스 정당체제를 벗어나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하되 지도부는 경선을 통하여 개편하는 등 개혁과 변화를 더 머뭇거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JP의 2선 후퇴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주장도 마주치는 손바닥이 없으면 허공을 맴도는 외로운 바람소리일 뿐이다. 오히려 그것이 조직의 호응을 못 받으면 '왕따'가 될 뿐이다.

JP가 당직개편을 당분간 유보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이 대행의 '왕따' 작전은 일단 휴전에 들어갔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휴전일 뿐이다. 못은 빼도 못자국은 남듯이 이번 파동은 JP나 이 대행 모두에게 깊은 상처의 못자국이 되고 말 것이다.

특히 이 대행이 자민련에서조차 '왕따'를 당하면 한때 500만표를 얻을 수 있었던 그의 정치인생도 당분간 허공을 헤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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