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본사고문

영국도 우리나라가 백제·신라·고구려 3국의 역사가 있듯이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 3국의 역사가 있고 지금도 있다.

특히 13세기 스코틀랜드의 민족적 영웅이었던 윌리엄 윌레스의 무용담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가슴에 연면히 흘러오고 있고, '브레이브 하트'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어 몇 년 전 우리 나라에서도 상영돼 큰 감명을 주었었다.

결국 윌레스는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런던으로 보내졌고, 죽은 뒤 시신은 갈기갈기 찢겨 머리는 런던 다리에 걸고 팔과 다리는 영국의 변방에 경고용으로 보내졌다.

또 하나 스코틀랜드의 영웅은 브르스(Robert the Bruce). 그는 우리나라 계백 장군처럼 불과 5000명의 결사대(후에 2500명 지원병이 합류)를 이끌고 2만 명의 잉글랜드군과 싸워 대단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1707년 스코틀랜드는 더 버티지 못하고 잉글랜드에 합병되고 만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스코틀랜드에는 잉글랜드에 저항했던 선조들을 기리는 축제들이 많이 있다.

특히 해마다 8월 초에서 9월 첫 일요일까지 열리는 에딘버러 페스티벌이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밀리터리 타투(Millitary Tattoo).

스코틀랜드의 전통 악기인 백파이프와 드럼을 멘 군악대들의 퍼레이드, 그리고 갖가지 공연이 황홀하다. 특히 잉글랜드에 저항하던 선조들의 싸움모습을 재현, 돌 나르기, 통나무 쌓기, 투창시합 등은 참으로 이채롭다.

정말 지금은 영국 여왕을 국가원수로 영연방에 들어가 있지만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그들이 만든 골프와 스카치 위스키와 함께 그들의 역사를 무척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난 10월 4일과 5일, 논산천 둔치에서는 황산벌 전투가 재현되어 둔치를 가득메운 참석자들의 갈채를 받았다.

백제문화제의 일환으로 올해 처음 등장한 것인데 과연 지금까지 백제문화제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서기 660년 백제의 계백 장군이 이끄는 5천 결사대와 신라군 5만 명이 맞선 최후의 결전 '황산벌 전투'. 이 이상 극적인 장면이 어디 있을까.

현역 군인, 학생 등 800여 명과 군마 30필이 90분간에 걸쳐 연출해낸 황산벌 전투는 가히 절박했던 역사의 순간을 녹아내리기에 충분했고, 백제 후손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특히 이원발(계백 장군 역) 등 TV 사극으로 인기를 모았던 '대조영'의 출연진들이 대거 등장한 것도 좋았지만 '5천 결사대'의 장엄한 외침, 신라의 화랑 관창을 생포하는 장면, 그리고 기마병과 궁수병 등의 대규모 전투재현은 잠시 관중들로 하여금 역사의 시계 바늘을 뒤로 돌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황산벌 전투'를 재현한 의미를 소화할 수 있을까.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윌리엄 윌레스나 브르스 같은 영웅을 잊지 않음은, 그리고 축제를 통해 그 역사를 기림은 스코틀랜드의 정신적 자유를 구가하기 위해서다. 잉글랜드와 구별돼야 할 '스코틀랜드의 혼'. 우리가 백제문화제에 열정을 쏟고 강열하게 '황산벌 전투'를 재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곳에서 우리 충청인의 정신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기품있는 충청인의 문화적 모태(母胎)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코 나약하지 않았던 백제, 화랑 관창을 잡고도 놓아주는 계백의 관대함, 중국은 물론 일본과 인도 등 동아시아를 무대로 했던 '교류왕국 대백제'를 확인하는 것이 이번 축제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황산벌에서 계백장군의 외침도 바로 그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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