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유물' 63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다
상태바
'백제유물' 63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다
  • 이기준 기자
  • 승인 2008년 09월 30일 19시 00분
  • 지면게재일 2008년 10월 01일 수요일
  • 11면
  • 지면보기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남도역사문화원 日人기증 유물 특별전
충남도역사문화원이 공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아메미야 히로스케(雨宮宏輔) 선생이 충남도에 기증한 유물들을 공개하는 특별전을 충남도역사박물관에 마련해 주목된다. 이번 특별전은 제54회 백제문화제 기간과 연계해 오는 3일 개막돼 이달 말까지 개최된다.  <편집자주>

▲ 충남도역사문화원이 공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아메미야 히로스케(雨宮宏輔) 선생이 충남도에 기증한 유물들을 공개하는 특별전을 충남도역사박물관에 마련해 주목된다. 이번 특별전은 제54회 백제문화제 기간과 연계해 오는 3일 개막돼 이달 말까지 개최된다. <편집자주>
아메미야 히로스케씨 道에 기증 민간 차원 유물반환운동 기폭제

최근 충남도는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으로 반출된 백제 유물을 비롯한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되찾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 노력이 첫 결실을 맺어 일본의 아메미야 히로스케 선생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물을 충남도가 기증받게 됐다. 기증유물은 총 68종 328점으로 청동거울 등 금속제품 14점, 마제석검 등 석제품 11점, 옻칠목제용기 1점, 자기류 등 토제품 67점, 사진·옆서 등 지류 234점, 탄화미 1점 등이다. 기증유물은 지역민의 매장풍습과 일상생활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며,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공주 금강의 섶다리 사진엽서는 최초의 사진자료이고, 순종 황제의 신의주 방문 기념엽서 또한 보기 힘든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고고학적 유물로는 공주 학봉리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철화분청 2점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유물 기증에 따라 충남도는 지난 8월 25일 도청 대회의실에서 아메미야 선생과 문화재 관계 전문가 등을 초청한 가운데 기증식을 거행한 바 있다. 충남도역사문화원은 그 후속조치로 전문가들의 감정평가 등을 거쳐 유물의 정리를 마친 후, 산하 충남역사박물관에서 유물도록의 발간과 함께 이번에 특별전을 개최하게 됐다.

전시기간은 제54회 백제문화제가 시작되는 오는 3일부터 31일까지이며, 장소는 충남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이다. 또한 백제문화제 참여한 내방객의 편의를 위하여 '백제향' 행사장 주변에도 유물사진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 공주섶다리1910년대 공주 금강에 세워진 섶다리(산성교)의 모습이다. 자동차 통행이 가능했다고 한다. 사진에는 다리를 건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며, 강 건너편으로는 공북루의 모습이 보인다. 섶다리는 1920년대 배다리로 고쳐 세워지고, 1933년에 현재의 금강철교가 준공되었다. 우편소인에 '立太子禮紀念公州(입태자예기념공주)'라 되어 있어 히로이토 일본 국왕이 태자에 즉위한 해인 1916년에 공주에서 발행된 엽서로 추정된다.

'63년 만의 귀향, 아메미야 히로스케 기증유물 특별전'이라는 이름으로 유물도록도 발간하여 국내외 관계자에게 배포할 예정이다. 특별전이 열리는 충남역사박물관은 유물 기증자 아메미야 히로스케 선생과 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기증유물을 수집했던 아메미야 히로스케 선생의 선친인 아메미야 다다마사 선생은 박물관 주변에서 사립 박물관을 운영하였고, 박물관 주변의 벚나무 식재에도 직접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아메미야 히로스케 선생은 기증식 당시 "선친과의 인연이 각별한 곳에 보관하게 되어서 감회가 새롭다"는 소감을 밝힌 바가 있다.

현재 충남도는 기증식에 이은 이번 특별전이 민간 차원의 유물 반환운동의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특히 충남과 연고가 있는 일본인 소장유물의 반환을 위하여 민관이 함께하는 방안을 모색 중에 있다.

한편, 충남역사박물관은 3일 오후 3시 유물을 기증한 아메미야 히로스케 선생을 초청, 지역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기증유물 특별전시회 개막식을 할 예정이다. 이기준 기자 poison93@cctoday.co.kr 

▲ 마제석기류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석기유물로 모두 5점이다. 모두 손에 쥘 수 있는 자루가 달린 유병식(有柄式) 석검으로 검신의 양측면에 날이 세워져 있으며, 횡단면은 마름모꼴 또는 볼록렌즈형이다. 여러 번 사용으로 인해 재가공이 이뤄진 것도 있다.
▲ 분청사기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약칭이다. 고려청자 쇠퇴기인 15세기 전반기에 전성기를 이루다가 16세기 중엽 이후 백자에 흡수되면서 점차 소멸됐다. 백토를 그릇 표면에 씌우는 백토 분장기법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무늬를 베푸는데 무늬의 종류나 시문기법에 따라 상강, 인화, 박지, 음각, 철화, 귀얄, 덤벙 분청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철화문과 인화문이 새겨진 대접과 뚜껑 등이 있으며, 접시는 귀얄문이 새겨진 것이 대부분이다.
 ▲청동수저 젓가락청동숟가락은 형태가 단순하여 제작시기를 구분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다만 자루 끝부분의 모양에 따라 대체로 반원형(半圓形), 사두형(蛇頭形), 연미형(燕尾形), 역제형(逆梯形), 약시형(藥匙形) 등으로 구분되고 있다. 이들 유물은 조선시대 무덤에 부장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박람회 그림엽서1929년 9월 12일 조선총독부 시정 2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조선박람회의 그림엽서이다. 10장 1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경북궁에서 열린 조선박람회는 일본이 조선의 식민지배 성과를 대내외에 과시함과 동시에 일본 내 주요 도시와 대만, 그리고 만주를 참여시킨 동아시아 식민지 박람회의 성격을 갖고 있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열린 국제행사였으나 전시장으로 사용된 경복궁과 수많은 전각들은 사라지고 개조되어 원형을 잃게 되었다.
▲ 시정기념 우편엽서조선총독부 시정기념 우편 그림엽서이다. 조선 총독부는 조선에 대한 식민통치가 시작됨을 경축하는 시정(始政) 기념엽서를 발행해 통치의 정당성을 선전했다. 1910년 조선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병합된 직후부터 시정기념엽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들 엽서는 일반 대중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어서 선전효과가 컸다. 주로 일본의 식민통치 정당성을 확보해 조선인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한 근대화 관련 이미지가 주를 이뤘다.  또한 내선일체나 황국신민화와 같은 동화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이미지가 많았다. 이번에 기증받은 시정기념 엽서는 1912년을 제외한 1910년부터 1919년까지의 엽서로 총 10건 25종 60장이다. 해마다 3매 1세트로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
▲ 순종즉위 기념엽서대한제국과 관련된 엽서로 3건 5종 5장이다. 사진의 하단 좌우는 한국 황제폐하 즉위기념 엽서이다. 1907년 순종은 경운궁 돈덕전에서 즉위식을 치른다. 이 엽서에는 오른쪽에 곤룡포를 입은 순종의 상반신 사진이 실려있고, 왼쪽으로는 즉위식이 거행된 경운궁 돈덕전의 전경이 실려있다. 사진의 상단 중앙은 순종의 어진이 실린 사진으로 순종은 프러시아식 제복을 입고 있다. 사진의 왼쪽에는 태극기가 아래로는 오얏꽃이 그려져 있다. 일본 요시히토 태자가 순종의 즉위식에 참여하기 위해 조선에 방문하였을 때의 엽서로 추정된다. 사진의 상단 좌우는 고종과 순종의 사진이 실린 엽서이다.
▲ 공주 마제석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