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회장

어느 40대 정부기관의 과장은 요즘 공무원 사회의 풍속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퇴근 후 소주 한 잔이 생각나서 아랫사람에게 '자네 오늘 약속 있나?'하고 물으면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 약속이 있어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지 아십니까? '약속있나?'하고 물으면 당당히 '예, 와이프하고 영화 보러 갑니다'하고 대답하죠. 이렇게 공무원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합니다."

물론 그 과장은 과거의 풍속도에 향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아랫사람 쪽에서 보면 민주적 변화다. 아랫사람에게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영화구경을 갈 권리도 있고 개인 생활의 영역도 있는 것이니까.

그러면 무엇이 이처럼 직장의 기류를 바꿔 놓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공무원 인사에 '다면평가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승진이나 보직변경 등에 동료직원들의 평가를 반영하면서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눈치를 보고 아랫사람은 어깨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보도에 따르면 참여정부 출범 후 이와 같은 다면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기관은 중앙행정기관의 경우 54개기관 가운데 48개 기관으로 88.9%나 된다. 이들 가운데 다면평가를 승진에 반영하는 기관은 43개나 되고, 14개 기관은 보직관리에 활용하고 있으며, 39개 기관은 성과상여금 지급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부하직원이나 동료직원의 눈에 들지 않고는 승진이나 좋은 보직을 바라기 힘들고, 성과상여금 봉투도 얇아질 전망이다. 그래서 직장의 민주화나 상명하복이 아닌 상하협력 같은 직장문화 변화에 다면평가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보다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 더 큰 것 같다.

무엇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야단치는 풍속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면 업무처리에 문제가 있는 직원들을 야단쳐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고 한 간부는 고백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업무에 잘못이 있는 직원을 보고도 침만 꿀꺽 삼켜야 하는 상관은 상관이 아니고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하다. 누구나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조직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업무관계로 윗사람에게 야단맞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질책을 받은 일, 결재서류를 집어던지며 호통을 치던 상사의 얼굴,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강요할 수도 없고 그런 세상도 아니지만 그것이 사심(私心) 없는 질책일 때는 훗날 몹시 고마웠던 기억들이 난다.

그런데 잘못 가고 있어도 눈 감아 주고 업무추진이 좀 삐뚤어져도 오히려 등을 두드려 줘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조직은 발전이 없다. 그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 군대조직에서 이렇게 되면 보통 큰 일이 아니다. 훈련을 많이 시키는 지휘관이나 엄한 군기를 세우는 지휘관이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 온다면 생각하기도 두렵다. 정말 잘못 가고 있는 부하직원을 보고 야단치는 상사가 간 큰 상사로 묘사되는 세상이 돼서는 안된다.

또 간부들이 밀린 일을 처리하려고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자리에 남아 있는 국장, 과장이 '간 큰 상사'로 지목받는 것도 온당치 않다.

우리 나라가 지금 이만큼 살게된 것도 과거 모두 시간 따지지 않고 뜨겁게 일한 덕분이다.

따라서 다면평가가 긍정적인 것이 많다 하더라도 전면적으로 시행하기에 앞서 부작용을 보완해 가며 단계적으로 해 나가는 것이 어떨까? 공직사회는 흔들려서는 안될 국가 조직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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