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회장

1983년 10월 9일 아침 미얀마(버마)를 친선방문 중이던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아웅산 국립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호텔에서 안내를 맡은 미얀마 내무장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미리 와서 기다려야 할 내무장관이 정해진 시간보다 5분 늦게 도착했다. 의전상 큰 실례를 한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화가 나서 5분 동안 내무장관을 밖에서 기다리게 했다가 출발을 했다. 그러니까 참배시간은 그만큼 늦어진 셈이다. 전 대통령이 묘소 가까이 이르렀을 때 아웅산 묘소 천장에 북한 테러분자들이 최고위층의 지시로 설치한 원격조종폭탄이 폭발했다. 이 사고로 우리 정부의 공식수행원 17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14명이 부상을 입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미얀마 내무장관이 5분 늦는 바람에 화를 면한 것이다. 기막힌 '운명의 5분'이었다.

그는 급히 숙소로 되돌아 와서 장세동 경호실장에게 가방에서 청심환을 꺼내 주는 자상함을 보이기도 했다. 전씨의 운명을 갈라 놓은 운명의 5분은 또 있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가 김계원 육군참모총장과 함께 차를 타고 남산 정보부로 가느냐, 육군본부 벙커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말다툼을 할 때 그 순간 차는 육군본부로 향하고 만 것이다. 채 5분도 안되는 시간. 그 순간에 이미 곧 닥쳐올 '전두환 시대'가 잉태된 것이다. 만약 정보부로 갔더라면 '전두환 시대'가 아닌 '김재규 시대'가 등장했을 것이다.

얼마 후 전두환 소장은 12·12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을 잔혹하게 짓밟으며 대통령이 되었다. 부정축재 정치인의 재산을 초법적으로 환수하면서 외친 것이 '사회정의'였다. 그리하여 그가 만든 정당도 '민주정의당'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정의를 내세운 전두환씨는 1997년 유죄 확정과 함께 2205억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았다. 재벌들에게 엄청난 뇌물을 거둬들인 데 대한 법의 심판이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까지 그 금액의 14.3%인 314억원만 내고 나머지는 돈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정치자금으로 대부분 써 버렸고 은닉재산도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한 추징금 환수를 위한 재판에서 은행예금 29만1000원이 자신의 전 재산이라며 여러 사람들이 도와줘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전씨의 주장에 국민들은 그렇게 가난한 사람의 손자들이 미성년자인데도 수십억원대의 부동산을 어떻게 소유하고 있는지, 무슨 돈으로 떼를 지어 골프를 치러 다니고 해외여행을 하며,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진 경조사비는 무엇으로 조달하는지 분노를 터뜨렸다.

이런 판에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전씨에게 부과한 1000만원의 과태료를 지난주 납부한 사실이 밝혀져 또 한번 전씨의 은닉재산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 재산 29만1000원'으로는 대답이 안되는 그의 행적 때문이다. 특히 '대한변협신문'이 최근 주장한 전씨와 그의 친척들 재산에 대한 압수 수색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국민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이것은 정치보복의 차원이 아니다. 전씨 일가의 보유 재산이 250억원대에 이른다는 세간의 의혹이 있는 만큼 이런 의혹과 분노가 말끔히 씻어지지 않고는 이 땅에 태어나 열심히 살아가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감만 안겨 준다. 국가의 기강, 민족의 혼에 독소가 된다.

아웅산에서 운명을 갈라 놓은 5분, 전두환씨는 지금 그 순간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털어 놔야 한다. 그때 살아 남았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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