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문 정치행정부장

"들어올 때처럼 작은 옷가방 두 개 들고 나갈 겁니다."?

압둘 칼람 인도 대통령이 밝힌 '퇴임의 변'이 10억 인도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지난 2002년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된 칼람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중에도 채식주의자를 자처하며 청렴한 생활로 국민의 존경을 받아 왔다.

핵무기 전문가 출신인 칼람 대통령은 한 강연회에서 '함부로 선물을 받으면 판단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힌두교 법전을 인용하며 "어제 한 유명인사가 펜 두 개를 선물했지만 돌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궁에 들어올 때) 내가 가진 것은 작은 옷가방 두 개뿐이었다. (나갈 때도) 그 가방을 가지고 나갈 것"이라고 말해 강연회 참석자들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나갈 때도 국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며 당당하고도 멋진 모습으로 떠나는 칼람 대통령을 보면서 가슴 한 구석이 씁쓸한 것은 왜 일까.

대통령 선거일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권 주자들의 지방행이 잇따르고 있다. 충청권은 물론, 영호남을 누비는 대권주자들은 한결같이 '내가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와 '남이 대통령이 되면 안되는 이유'를 설파하느라 안간힘을 쏟고 있다.

민주, 평화, 성장, 발전, 경제대국 등 그들이 나열하는 말대로라면 우리는 이미 선진국에 진입하는 데 아무런 장애물이 없어 보인다.

5년 전에도 그러했고. 10년 전에도, 그 훨씬 전에도 대권 주자들의 말대로라면 이 땅엔 헐벗은 소외계층이나 저소득층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당선만 시켜주면 국민을 받들고,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나라로 만들어주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지만, 대통령의 퇴임이 임박하면 국민들의 상당수는 자신의 손가락을 원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책 대결은커녕 여전히 이합집산과 상호 비난을 거듭하고 있는 범여권이나 경선 룰(Rule)을 놓고 지루한 공방을 계속하고 있는 야권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또 다시 누구를 찍어야 하는 지 망설임이 없지 않다.선거 때마다 경제 회생, 선진 정치 구현, 지역구도 타파 등 근사한 포장지로 국민을 현혹하고, 당선되면 곧바로 자기 잘난 덕분이라고 호도하는 신물정치의 구태가 이번에도 반복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대통령은 되는 것도 어렵고, 하는 것도 어렵다.

역사는 누가 대통령을 했느냐 보다, 어떤 대통령이었느냐를 더 중시한다. 그만큼 '물러난 후'가 더 어렵다는 얘기다.

'존경하는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으면 손사래부터 젓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는 어찌 보면 참으로 불행한 나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노무현 17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아홉 명의 대통령을 만나왔다.

4·19 혁명으로 하야한 이승만 대통령, 5·16 쿠데타로 물러나야 했던 윤보선 대통령, 부하의 총탄에 유명을 달리한 박정희 대통령, 군부의 입김에 눌려 8개월 만에 자리를 내놓은 최규하 대통령, 퇴임 후 '영어(囹圄)의 몸'으로 전락했던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아들이 모두 옥살이를 해야 했던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대통령은 하나같이 국민들에게 슬픈 뒷모습을 보여줬다.

퇴임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평가도 그리 높지 않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남은 기간이라도 취임식장에서 국민에게 선서했던 초심을 잊지 말기를 소망하고 있다.

압둘 칼람 대통령처럼 청와대를 나설 때 빈손으로 나오기를 기대하진 않는다.

그러나 재임기간 중 국민들이 소망했던 대로 행하지 못한 일은 없었는지, 무엇 때문에 국민의 바람을 지켜주지 못했는지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나오기를 희망한다.

18대 대통령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라도 국민에게 달콤한 말보다는 국민들에게 가슴으로 묵직하게 다가오는 그런 대통령을 우리도 꼭 한 번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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