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독일의 중심도시 뮌헨에 가면 잉글리셔 가르텐이란 공원이 있다. 뮌헨 도심에서 2㎞쯤 동쪽으로 벗어나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나간 잉글리셔 가르텐은 길이만 36㎞, 폭 14㎞를 자랑한다. 다뉴브 강의 지류, 이자르 강이 가로 질러 흐르며 면적만 총 375㏊에 달한다. 산책을 나선다면 말이 좋아 길이 36㎞이지 하루종일 걸어도 끝에서 끝까지 갈지 모르겠다. 또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 선 숲은 가슴을 벅차게 한다. 숲과 숲 사이로 끝없이 이어지며 산책로가 있고, 드넓은 잔디밭, 호수가 펼쳐진다. 그 곳을 무대로 공차는 아이들, 뜨거운 햇살과 일광욕을 즐기는 남녀, 날아드는 새와 야생동물들, 배 타는 연인들, 자전거를 타고 승마를 즐기는 가족, 동호인들이 있다. 그리고 가르텐 비어광장은 회포를 푸는 시민들을 담아내고 야생동물 보호관찰소, 수목원, 야외음악당, 전시관, 공연장 등이 숲 곳곳에 숨은 듯 들어 차 있다. 잉글리셔 가르텐을 굳이 한국식의 잣대로 다시 재단해서 말하면 도심공원으로 세계 1위의 규모를 자랑한다. 도심공원의 대명사로 불리는 뉴욕의 센트럴파크, 런던의 하이드파크도 비교를 사양할 정도다. 잉글리셔 가르텐은 원래 바이에른 왕실의 수렵장으로 사용되며 오랜 역사 동안 일반인에게는 불가침의 지역으로 인식돼 왔으나 선제후 칼 테오도르가 1789년 시민에게 개방하며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왕실은 가진 자의 의무를 잊지 않고 공원의 규모를 때에 따라 줄이기보다는 인근의 땅들을 지속적으로 매입해 확대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곳 뮌헨 사람들은 잉글리셔 가르텐의 면적을 잘 모른다. 있는 그대로 즐기고 호흡하며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조끔씩 조금씩 더 늘려 나갈 뿐이다. 그것이 인간이 환경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환경, 환경과 인간을 동일시하는 개념이 철학과 관념을 뛰어 넘어 생활 속에서 실천으로 묻어난다. 그래서 잉글리셔 가르텐은 뮌헨 시내 어디에서나 전차 또는 시내버스로 10∼15분이면 다다를 수 있다.

잉글리셔 가르텐은 130만 뮌헨인의 용광로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휴식뿐만 아니라 야외공연, 음악회, 그림그리기 대회에서부터 자전거타기 대회까지 다양한 숲의 잔치가 쉼 없이 열린다. 단순화하면 그저 숲일 뿐인데 열기를 뿜어내고 갈등을 융화하고 세계적 최고의 경쟁력을 길러낸다.

잉글리셔 가르텐은 대가 없이는 만들어 질수 없는 대역사다. 도심 한 편을 차지한 채 거대한 공룡처럼 똬리를 틀고 있어, 도심의 발전 축을 막고 있다고 할지, 금싸라기 땅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할지, 이전하고 새로운 활용 방안을 찾자고 할지 등 다양한 명분과 구실이 제기됐을 법하다. 그러나 200여 년 동안 변함없었던 왕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공원을 지켜 냈으며, 여기에 시민들의 성실한 지지와 말없는 동참이 함께했음이 분명하다. 눈 앞의 유혹을 이겨낸 대가는 오늘날 뮌헨의 경쟁력이 됐다.

대전에는 뮌헨에 없는 것이 있다. 돈 주고도 살수 없고, 인간 노력만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 있다. 대전 도심을 용처럼 둘러싼 산들이다. 신이 내려준 선물이다. 수목원을 만들어도 3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도 자연만은 못하다. 과거 도시의 경쟁력이 전통과 사람, 역사 등이었다면, 21세기를 지향하는 도시의 경쟁력은 자연일 수밖에 없다.

터널 통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대전의 허파, 월평공원도 마찬가지다. 더 고민하고, 해법이 없으면 천천히 가면 된다. 뮌헨인은 당장 성과를 내려 연연하지 않았다. 늦더라도 오늘 내가 할 일, 마땅히 해야 할 선택을 중요시했다. 공원 하나를 만드는데도 수백 년씩 걸렸다. 왜냐하면 내일은 후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김현진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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