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본사 회장

▲ 변평섭 본사 회장
JP(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우리 국회의원 가운데 유일한 9선 의원이다. 국내 최고의 기록이다.

한 정치인이 9선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며 외국에서도 보기 드문 기록이다.

JP를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도 이 점만은 인정해야 한다.

그런 JP가 2년 후 다음 17대 총선에서 한 번만 더 국회에 진입하게 된다면 10선이 된다.

그러나 지금 JP는 그 10선의 간절한 문턱에서 흔들리고 있다. JP를 최근 만난 사람은 그가 전에 없이 의기소침해진 것 같더라고 했다. 지난주 필자가 JP를 만났을 때 10선의 가능성을 물었더니 "물론 10선도 하고 15선의 기록도 세울 거요"하며 크게 웃었다. 그러나 JP가 '10선 꿈'을 실현시킬지는 그를 둘러싼 현실이 냉랭하다.

우선 중앙당 당사가 너무 한적하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사 주변처럼 농성을 하거나 시위하는 사람도 없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 중인 닭장 같은 전경 버스도 볼 수 없다. 북적대야 할 기자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전경이 없고 기자들 발길이 뜸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금배지를 단 현역 국회의원도 보기 드물다. 이 역시 자민련과 JP의 현주소를 말해 주는 것 아닐까?

한동안 자민련의 마포 당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특히 JP의 눈도장이라도 찍어 공천을 받아 보려는 정치인들이 많았다. 마포 당사뿐 아니라 JP가 가는 곳이면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다녔다. 선거를 앞둔 모 국회의원은 공천 탈락설이 나오자 JP의 외국방문에까지 달려갔다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은 JP에 의해 공천을 받고 금배지를 단 사람들 상당수가 JP를 떠나려 하고 벌써 떠난 사람도 있다. 심지어 JP와 정몽준 의원 등 4자연대마저 한나라당을 선호하는 의원들의 반발로 성사되지 못했다.

JP는 이런 상황을 두고 "떠날 사람은 떠나라"고 언성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혼자라도 당을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어떻게 하다가 JP와 자민련이 이렇게 됐는가?

지난 달 청와대에서 있은 대통령 후보들과의 '북한 핵' 문제 간담회에도 JP의 자리는 없었다. 물론 후보가 아니기 때문이지만 정당이 대통령 후보를 못내는 그 자체가 문제가 있다. 그래서 정당 인기도에서도 한나라당, 민주당에 뒤지고 민주노동당에까지 뒤지는 여론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사실 JP가 민주당과의 공동 정권을 탄생시킨 소위 DJP연대에서부터 자민련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시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공천 갈등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원내교섭단체마저 구성 못하는 소수당으로 전락해 버렸다.

당에 남을까, 한나라당으로 갈까 고민하고 있는 자민련 A의원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우리 당 후보들이 패배했습니다. 시장, 군수, 도의원 심지어 군의원까지…. 그래서 나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를 받쳐 줄 기반이 무너졌으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우리 충청권을 대변하는 역할은 누가 합니까? 이 때문에 망설여지는 거죠."?

또 다른 자민련 고위 당직자는 JP에게 돈이 몰리지 않음을 지적했다.

적어도 당의 영수가 돼 당 살림을 꾸려가고 의원들을 추수려 나가려면 정치자금으로 한달에 2억∼3억원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파이프 라인이 없으면 조직이 흔들리는 게 한국 정치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

이런 악조건 속에서 '갈 사람은 가라' '혼자서라도 당을 지켜 17대를 바라보겠다'며 언성을 높이는 JP의 심중은 매우 복잡할 것이다. 정당은 혼자 지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JP의 지금 모습이 타이타닉호의 갑판에 서 있는 선장의 모습과도 같다.

그에게는 빙산에 부딪쳐 침몰하는 배를 구할 결단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국가를 위한 최후의 선택이며 명예로운 결단이 될 것인가.

"해가 넘어갈 때 황혼이 찬란하고 아름답다"던 JP의 말처럼 그 자신 어떤 황혼을 만들지 충청인들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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