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문 정치행정부장

지난 몇 달 동안 프랑스는 대선 정국에 휩싸여 유난히 뜨거운 계절을 보냈다.

전후 세대의 전면 등장,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 가능성, 선명한 좌우 이념 대결에 힘입어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이번 프랑스 대선은 국민의 높은 투표율에서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연출했다.

지난달 1차 투표율 83.8%, 이번 결선 투표율 84%는 지난 2004년 우리의 대선 투표율 70.8%와 큰 차이를 나타냈다.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가 만연돼 있는 우리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큰 대목이다.

좌파와 우파, 전후세대 남녀 후보의 대결이라는 외형적 요인이 관심을 증폭시키기도 했으나, 근본적으로는 후보 간 분명하고 치열한 정책대결이 프랑스 국민들을 투표장으로 이끈 것이다.

정책 대결은커녕 여전히 이합집산에 상호 비난을 거듭하고 있는 범여권이나 경선 룰(Rule)을 놓고 지리한 공방을 계속하고 있는 한나라당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부끄러워 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는 또 프랑스 정치사상 처음으로 '프랑스인의 피'가 섞이지 않은 헝가리 이민자 2세 출신 대통령이라는 진기록을 세운 니콜라 사르코지(52) 당선자 못지 않게, 제1야당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53) 낙선자의 행보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과거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이어 새로운 여성 지도자의 대두(擡頭)를 점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지만, '깨끗한 승복'으로 '민주주의의 승리'를 뒷받침했다.

그녀는 개표가 시작되기도 전인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패배를 인정하면서 "차기 대통령(니콜라 사르코지)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며 직무를 훌륭히 수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선을 치르기도 전에 당을 뛰쳐나가고, 경선에 불복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모습을 자주 목도한 우리로서는 루아얄의 깨끗한 승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루아얄이 직선 최고 지도자에 도전해 얻은 46.9%의 득표율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얻은 48.9%에 근접하는 것이어서 그녀의 승복이 더욱 빛을 발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언론들은 이번 프랑스 대선을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지목했다. 승리한 니콜라 사르코지나 패배한 루아얄 모두 선거의 의미를 지켜내는 데 전혀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사생활 깊은 곳까치 들춰내거나 각종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막말을 서슴는 진풍경도 그곳에선 연출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선거 때만 되면 눈 앞의 이익을 위해 평소의 정치적 소신을 내팽개치는 구태도 그 나라에서는 빚어지지 않았다.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서라면 구차한 자기변명도 서슴지 않는 우리네 정치문화도, 툭하면 민의를 거스르는 정치적 패륜을 일삼는 우리의 후진성도 프랑스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겠다며 이리저리 표밭을 누비다가, 진지한 반성과 참회 없이 또다시 국민을 농단하는 신물정치도 엿볼 수 없었다.

선거 때마다 경제 회생, 선진 정치 구현, 지역구도 타파 등 근사한 포장지로 국민을 현혹하고, 당선되면 곧바로 자기 잘난 덕분이라고 호도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프랑스 대선을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는 12월 대통령도 잘 뽑아야 되지만, 예비후보 선출과정도 꼼꼼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하야(下野)'하겠다며 국민에게 으름장을 놓아도 한 번 뽑은 대통령은 쉽게 바꾸지 못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멋진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아 우리도 한 번 국민모두에게 존경받는 대통령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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