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사회부장

요즘 지역 공직사회의 핫이슈는 달리 보면 정책에 있지 않다. 대전시가 벌이는 3000만 그루 나무심기나 자전거타기도, 충남도와 서천군이 머리를 싸매는 장항산업단지 살리기, 국방대 논산 유치도 아닌 듯싶다. 삼삼오오 만나는 공직자들마다 입에 모으는 화두는 철밥통 깨기와 이에 대한 대처법이다. "세상 많이 변했다"는 푸념에서부터 "원론에는 공감하지만 방법이 문제"라는 점잖은 대응논리 전개까지 구구하고 다양하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는 오는 4월 25일로 예정된 대전 서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다. 한나라당이 어쩌구, 열린우리당이 뭐라구, 국민중심당이 저쩌구…. "공직에 있는 사람이 뭘 알겠냐"고 시작한 얘기는 판세분석에서 동향까지 무릎을 탁 칠만큼 명쾌하고 빠르다.

한참 동안 철밥통 깨기에 흥분한 뒤 이어지는 정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다. 대화 흐름이나 스토리 앞뒤 구성상으로 보면 안 어울리게 보일 수 있다. 일반 서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 관심도 없고 누가 나왔는지도 모른다고 하고 투표율이 30%를 넘기 힘들다는데 업무 열심히 일 하라는 철밥통 깨기와 선거는 공직분위기에서 선뜻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잘 뜯어보면 두 화두는 묘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철밥통 깨기와 선거는 모두 윗 분들의 관심사항이란 인식이다. 정작 맡겨진 정책적 실천적 과제는 담당 실국, 담당직원의 몫이다. 모이라면 모이고 흩어지면 그만이지만 이 두 가지 이슈는 풍향을 잘 타야 한다. 신중하면서도 줄을 잘 서서 처신할 사안이란 뜻이다. 윗 분과 견해가 다르면 구만리 같은 앞길에 빨간불 켜질까 내심 걱정을 안 할 수 없다. 또 우리나라 사람만큼 여론에 민감하고 정치에 관심 많은 민족도 어디 있겠는가. 불과 얼마 안남은 선거에 대해 족집게도사 같은 견해도 펼쳐보고 싶다. 말로 한 몫 보려는 속내도 깔려있다. 다분히 기회주의적이고 해바라기성의 행태다.

공직사회가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는 각성과 개혁이 필요하다. 지역민을 위한 일 보다는 전문가 뺨칠 정도로 정치 흐름에 민감하고 박식해서야 어느 것에도 쓸 용처는 없다. 한편으론 풍향을 쫓고 다른 한편으론 철밥통 비판에 맞불을 지피기 여념이 없다면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업무는 관례적이고 의례적일 수밖에 없다. 주민에 다가가는 정책, 신선한 아이디어, 연구된 대안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면 일단 비켜서기 바쁘고, "조직사회에 길들여져서" 라고 자조 섞인 한계를 드러낼 뿐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대다수의 공직자를 비판하거나 폄훼하자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낮에는 민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현장을 파악하느라 정신없고, 밤에는 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업무처리 하느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공직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일반 시민들은 오늘의 공직사회를 바라보며 마음으로부터 변화를 원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4일 "사실 그대로 쓰면 더욱 자극적이다"면서 완곡하게 내놓은 퇴출대상 공무원의 행태를 보라. 상습 음주, 성 폭력적 언어의 공무원, 맡은 업무는 전가하고 근무시간에 자격증 공부만 하는 공무원, 민원인 전화를 안 받으려고 소리음을 꺼놓은 공무원까지 천태만상이다.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17년을 기다려도 소식 없는 장항산단 때문에 단식투쟁을 하고 국회 앞 농성을 해도 강 건너 불구경이다. 지역경제는 둘째 치고 소규모 상인들이 죽어간다고 대형할인마트 불허를 외쳐도 대안 없음이 답이다. 도시철도 역무원들이 말 못할 처우를 받고 있다고 해도 나와 보는 이가 없다. 도심에 나무를 심자고 하니까 심을 때가 없다고 말한다. 자전거타자고 하니 그날의 제스처만 있다. 몇몇 위정자들의 속 타는 이슈일 뿐이다. 이 또한 묵묵히 숨죽이고 태풍 지나갈 때만을 기다리는 복지부동이며 태업이다.

선출직 단체장은 표를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가까이에 있는 자가 가장 무섭다. 자신의 치부를 가장 자세히 알 수 있기 때문에 다음 선거에 무슨 악재로 돌아올지 모른다. 그런 선출직 단체장들이 오죽하면 자신이 부리고 함께 뛰어다녀야 할 공직 식솔들에게 칼을 들이대고 나서겠는가. 먼저 반성하고 싶다. 대전·충남만 해도 대전시장, 충남도지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단체장이 철밥통 깨기에 대해 "옳은 방향, 경각심 일깨우기, 올바른 잣대 적용" 등의 표현으로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현 제도로도 얼마든지 무능한 공무원을 가릴 수 있다는 말도 맞고, 서울시처럼 잣대와 행태를 제시하며 퇴출하겠다는 액션도 틀리지 않을 수 있다. 일각에서 말하는 마녀사냥식의 공직 재판, 할당제 퇴출은 시민요구를 대신한 경고성 메시지다. 속뜻은 열심히 뛰는 공무원에게 격려를 보내고, 다른 공무원에게는 지역민을 위해 더 잘해 달라는 간청의 표현이다. 겉치레나 풍향을 쫓기 보다는 일로 승부하는 공직사회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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