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걸(1946~ )

아이클릭아트 제공. 

내 안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아버지가 이름을 그렇게 지어 주셨다
농사를 짓는 이에겐
나무가 필요하다며

지금 나는 농사 대신 시를 짓고 있지만
내 가슴 어딘가엔 나무의 숨결이 있다
그것이 나를 움직여
시를 쓰게 한다

인정을 알게 하고 시절을 느끼게 하는
나무의 푸른 가슴, 나무의 따뜻한 체온
그 혼의 등불을 따라
내 생生이 걸어간다

시인의 내면에는 아버지가 심어주신 나무가 자라고 있다. 농사를 짓는 이에게 나무가 필요하다며 아버지가 이름 지어 주셨다는데. 지금 시인은 농사 대신 시를 쓰고 있다. 밭고랑 일구는 대신 시를 쓰며 시인의 가슴 어딘가 스미어 있는 나무의 숨결 따라 시인은 살아간다. 인정을 알게 하고 시절을 느끼게 한다는 그 나무의 푸른 숨결. 나무의 숨결은 어두운 밤에도 살아나 혼의 등불 되어 시인을 인도한다. 그 등불을 따라서 시인의 생이 걸어간다. 그렇다. 아일랜드 시인 세이머스 히이니도 할아버지 아버지의 노동을 숭상하여 어른이 되면 삽을 들고 농사짓고자 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의 손엔 펜이 들려 있어 농사짓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고 했다. 그런즉 그들에게 펜의 촉은 아주 작은 삽날인 셈이다.

내 가슴에는 어머니가 가꿔주신 꽃밭이 있다. 이 세상 살아가려면 꽃이 필요하다며 어머니께서 그렇게 해주셨다. 봄이면 그 꽃밭에 나를 데리고 가서 봄비와 함께 꽃씨를 묻어주셨다. 싹이 나면 풀을 뽑아주고 벌레도 잡아주며 그 꽃밭을 정성스레 가꿔주셨다. 철마다 꽃들이 피어나곤 했다. 봉숭아 꽃이 발갛게 차오르면 꽃잎을 빻아 봉숭아잎으로 감싸 손톱에 짙은 물을 들여주기도 하셨다. 아직도 그 손톱에 물든 분홍 빛깔은 내 가슴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그 빛깔이 짙어질 때면 나는 시를 쓰곤 한다.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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