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용 대전 유성구 부구청장

스타트업 종사자들은 밀도 있는 업무를 마친 후 음악, 음주, 스포츠 등을 통한 스몰토크(small talk)를 선호한다. 이들의 창의적이고 복잡한 정신적 활동은 일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여가 활동을 요구하고 그것은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업가들을 지역에 모이게 하려면 음악, 춤, 영화, 스포츠 등과 같은 재미가 필요하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SXSW(South by Southwest)가 이런 재미와 창업을 잘 버무린 사례이다. 1987년 3월에 시작한 SXSW는 소규모 음악축제로 시작했지만, 지역의 폭발적인 관심으로 곧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됐다. 음악으로 시작했지만 영화와 멀티미디어가 추가되고, 멀티미디어는 인터랙티브 부분으로 진화해 지역을 넘어 전세계적인 축제가 됐다. 또한 우수한 스타트업이 참가하면서 도시 전역을 배경으로 콘퍼런스, 축제, 전시회를 아우르는 기술과 로컬, 예술의 향연이 펼쳐진다.

38회째를 맞는 오스틴 SXSW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기조연설을 하고, 구글, 애플, 삼성전자 등도 대거 참여해 신기술을 공개하는 등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성과는 혁신적 창업가들이 소비하는 창조적인 문화 요소를 제공해 창업가와 로컬이 함께 하는 오스틴의 도시 브랜드를 창조했다는 점이다.

이젠 창업가들이 그들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 메마르고 딱딱한 연구실에서 산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들도 사람이며, 특히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창의적 일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독특한 취향을 맞춰줄 수 있는 다양한 어메니티(amenity)는 매우 중요하다.

KAIST와 충남대, 그리고 배후 지역으로서의 연구단지가 있고 스타트업 파크 등이 들어설 ‘어궁동’(어은동·궁동)도 마찬가지다. 어궁동이 혁신창업의 집적지가 되려면 뛰어난 창업가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과 소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연구개발(R&D), 투자, 콘퍼런스 같은 직접적 창업지원뿐 아니라 인디밴드, 독립서점, 수제맥주, 카페, 목공방 같은 창업가들이 소비할 수 있는 로컬 콘텐츠와 매력 있는 유성천 같은 공간 말이다. 이러한 콘텐츠와 공간은 직주락(職·住·樂)으로 연결돼 창업가들을 지역에 묶어두는(lock-in) 효과를 낼 수 있다.

혁신생태계 필요조건은 창업 공간이나 네트워크, 투자기회 등이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이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여기서 성공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들의 공간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한 애정은 그들이 살고, 또 놀고 싶은 매력적인 공간이 있냐에 달려있다. 어궁동이 그런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냐에 따라서 여기가 지속가능한 창업 혁신생태계가 되는가가 결정될 수 있다. SXSW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성구가 어궁동에서 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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