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균 ETRI 기술창업실 책임연구원

최근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23년도 전체 투자건수(1284건)와 투자 유치액(5조 3388억원) 모두 전년 대비 각각 27%, 52% 줄어들었다.

다행히 올 2월 기준,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총 투자금액이 441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6% 증가했다. 서서히 투자 훈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인공지능(AI), 헬스케어 등 분야에 집중되다 보니, 스타트업계 입장에서는 투자 회복에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시장에서는 ‘참호구축효과(Entrenchment Effect)’라는 말이 있다. 기업이 혁신적인 투자나 공격적인 비즈니스 활동을 하지 않고, 인적?물적 방어진을 구축해 자리만 보전한다는 의미이다. 즉,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워야 할 군인이 참호 안에서 돌격하지 않고 몸만 사리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대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이 큰 경영환경 속에서 그만큼 기업들의 기업가정신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벗어나 스타트업 혁신 생태계 관점에서 기업이 ‘참호구축’이 아닌 ‘돌격 앞으로’를 위해 필요한 것은 주주, 지배구조개선, 행동주의펀드 등 ‘메기’도 중요하다. 하지만 규제해소, 정부투자정책, 유인책 등 ‘당근’도 요구된다. 스타트업의 ‘돌격 앞으로’를 위해 필자가 생각하는 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 R&D 지원사업에 대한 참여대상을 면밀히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같은 체급 기업끼리 경쟁을 해야 하는데, 플라이급 경기에 미들급?헤비급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최근 R&D 예산 삭감이 상당하다 보니, 년 최대 2억원 이내 지원사업(설립 10년 이내 제한조건)에 매출 100억원 이상, 투자유치 수십억 원을 받은 기업 상당수가 지원해 초기 스타트업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지경이다.

아무리 혁신기술을 가진 스타트업 일지라도 매출 규모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면 선정과정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소위 골목상권에 중견기업이 치고 들어온 셈이다. R&D 예산삭감, 경기 침체, 투자 냉각기 등으로 인해 규모 있는 기업일지라도 물불 가릴 상황이 아닌 것은 이해하지만, 비슷한 규모의 기업끼리 경쟁하는 것이 공정한 게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 대(大)박날 기업만 좇지말고, 소위 중(中)박, 소(小)박날 기업도 적극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니콘기업, 스타기업만이 우리 경제를 살린다고 볼 수 없다. 모든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어렵다. 때문에 지향점은 유지하되, 지원정책이나 지원 관점은 유니콘과 같은 대박기업만 지향하기 보다는 중박·소박기업에 걸맞는 지원책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소(小)박날 기업은 고용 수십 명, 매출 수십억 원 규모 정도, 중(中)박날 기업은 고용 수백 명, 매출 수백억 원 정도로 보고, 지원책도 목표를 대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좀비기업, 불량감자(?) 같은 기업을 육성하자는 것이 아니다. 모든 기업이 다 대박기업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스타트업에 걸맞는 다양한 형태의 지속적인 지원책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국가 연구개발(R&D)의 초석인 정부출연연구원 혁신기술이 스타트업에서 보다 많이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최근 공운법(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 해제 후, 출연연 간, 연구자간 벽을 허물고 과학기술 연구생태계 구축을 위해 다시 뛸 채비를 하고 있다.

더불어 스타트업과도 과감한 스킨십, 벽 허물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이전이든 기술창업이든 출연연의 기술사업화 시스템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간 출연연의 벽이 너무 높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기업가정신은 스타트업에게만 해당될까? 아니다. 출연연 기관, 연구자 역시 기업가정신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내부 혁신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출연연의 ‘R&D 과제 이삭줍기’가 아닌 ‘스타트업 이삭줍기’를 해 보면 어떨까?

반세기 전 씨앗을 뿌린 기업가정신이 오늘날 K-반도체, 자동차(車), 배터리를 일궈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호속에 안전만을 고수하기 보다는 ‘돌격 앞으로’라는 기업가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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