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대 편집국 부국장(서울주재)

세계화속에서 각 나라마다 각종 인스턴트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추세다. 패스트푸드의 대표격인 맥도널드의 경우 이미 전 세계 곳곳에 깊숙히 침투하지 않았는가. 차 한잔을 앞에 놓고 오랜시간 담소를 나누던 유럽식 전통 명물인 카페조차 갈수록 쇠퇴 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디즈니 만화 속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은 독서를 즐기고 무언가 깊이 사색하기 보다는 당장 앞에서 감각적 자극을 초래하는 영상물에 빠진채, 성인이 돼서도 사태판단시 이성적 논리보다는 순간의 감성적 이미지에 치중하는 편이다.

이같은 인스턴트 문화, 감성 위주로의 사회현상 변모에 대해 관련 학계와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적절한 대안책은 나오지 않아 안타깝다. 전문가 등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 문명사에서 항상 어려운 것과 쉬운 것, 느린 것, 빠른 것, 복잡다양한 것, 단순한 것 등이 항상 경쟁해 왔으나 이제는 쾌속도 속에 쉽고 단순한 쪽으로만 축이 지나치게 치우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 사회의 놀랄 만한 문화적 업적과 연결되는 것들은 어려운 반면 디즈니·맥도널드나 일부 특정 전송매체 등에서 선전하는 가볍고 빠르고 단순한 것들은 우리가 지닌 무관심이나 안이함, 나태함 등에 상이하고 있어 앞으로의 인류적 사회·문화 발전의 방향과 질저하 등이 크게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당장 주민들 마음을 사로잡아 표로 연결시켜야 하는 크고 작은 정치인들 모두는 이미 이러한 사회적 인스턴트 조류에 편승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경우 TV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며, 내용보다는 포장이 우선하는 정치 형태가 확실하게 자리 잡은 지도 꽤 오래되지 않았는가. 한 예로 국회의원의 경우 대정부 질문요지나 토론의 내용 못지않게 화면에 비친 외모에 해당 의원 측은 물론 시청자들조차 더욱 신경을 쓰는게 현실이다.

이보다 더한 심각성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고 이끌어가야 할 각계 지식인들조차 정치인들처럼 인스턴트화 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대학교 연구실에서 두툼하고 깊이 있는 논문을 연구해 써대는 교수보다 특정신문에 원고지 몇장짜리 칼럼이나 시론 등을 발표하는 교수가 대접받는게 요즘 세태 아닌가. 결국 '차가운 머리'보다는 '뜨거운 가슴'을 앞세운 글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냉철한 이성에 기초한 현실 분석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특정 이념적 편견에 사로잡힌 채 과격하고 선정적인 주장이 남발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층은 조용하고 차분한 토론식보다 대중들에 인기를 선점하는 순발력이 해당인물의 능력으로 치부되는 풍토가 만연한게 요즘이다. 이처럼 우리 지식계의 척박한 풍토는 이념적 대립과 세대 갈등에 지쳐가는 국민들에게 화합의 원리를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끊임없이 적(敵)대시의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 사회의 피폐화 현상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제대로 된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성사된다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닌가. 한 예로 단순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는 지식인의 원고지 몇장이 충분할지 모르지만, 여러 사안을 고려해 실천 가능한 대안까지 마련하려면 수백장의 원고가 필요한 것이다.

다시말해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한 마디 구호로 군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정치인의 꿈이라면, 그 에너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분출될 수 있도록 '어떻게 바꿀 것인가' 방법까지 제시하는 것은 지식인의 몫이다. 지식인이 이러한 구실을 외면하면 구질서의 파괴는 가능해도 새로운 질서 확립은 불가능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참여정부들어 각 요직에 자리한 지식인들께서 이같은 역할을 제대로 해 왔는지 심각하게 반성해 봤으면 좋겠다. 극심한 불경기 속에서 사회 전 분야로 양극화 현상이 확산되는 등 전반적 국정불안으로 국민들 대다수가 불안해 하고 있다. '차가운 머리'를 가진 진정한 전문지식인들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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