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각 김용각건축사사무소 대표

다가오는 봄을 시샘하듯 며칠째 뿌려대던 겨울비가 그치고, 반짝 내리쬐는 밝은 햇살에 삼삼오오 나온 오랜만의 발걸음은 쌀쌀한 기온에 다시 옷깃 속 움츠린 모습으로 실내를 향한다. 현실적인 문제의 출현으로 삶 자체가 줄곧 즐겁지는 않지만 그래도 좀 편안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는 것은 나만의 희망사항일까?

재개발, 재건축의 붐으로 대전시가 온통 천지개벽을 할 것처럼 보이더니 불경기로 인한 사업의 연기, 지체, 포기 등의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즐겨먹던 과일의 가격이 쉴 새 없이 오른 것을 비롯하여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서민의 삶이 점점 위축되는 지금, 달리던 자전거의 페달을 멈출 수 없듯이 정지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요, 지자체의 행정이기에 위기를 피하거나 타파할 수 있는 지혜가 절실한 때인 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통 건물, 세계에서 가장 큰 해시계나 큰 가위, 가마솥 같은 공공조형물과 거액의 예산을 들인 항아리집 등 지자체가 반짝하는 아이디어에만 의존하여 혈세를 낭비하는 행정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은 아직도 지자체가 지역민과 전문가의 공감 없이 행정 위주의 기획을 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선도해야 할 사업들도 당연히 많이 있다. 충북 단양의 경우 청풍명월의 지역색을 지키며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다양한 환경보존 사업을 발굴하고 추진하여 ESG 우수지자체로 떠오르고 있고, 경북 영주시의 경우 도시경쟁력 강화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건축 및 공간 디자인 향상을 위한 공공건축가 제도의 운영과 같은 우수한 정책으로 2024년 도시설계 대상을 수상하였다. 위 두 지자체의 공통점은 선제적 제도 개선과 지역성을 살린 정책 수립, 지자체장 변화와 관계없는 일관된 행정이다.

노후도시 특별법의 제정으로 전국 100여곳의 200여만 가구를 대상으로 재건축이 가능하게 되었다. 대전시 역시 둔산지구를 비롯하여 인접지역 개발지까지 포함하면 왠만한 지역은 재건축이 가능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선도지구로 선정되기 위해 벌써부터 각 지자체가 분주히 용역을 통해 사업성과 기본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대전시는 서두르지 말았으면 한다. 기 개발된 둔산지구의 경우 일관된 15층의 성냥갑의 도열이라는 비아냥에서 보듯이 시민과 전문가의 적극적인 의견 수렴 과정이 생략되었을 때의 문제점 등이 여전히 존재하게 되고 구체적인 바램과 지역성의 도출 없이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좀 더 높은 층의 거대한 성냥갑의 도열만 구현하게 될 것이다.

50인의 공공건축가를 비롯하여 각종 위원회의 심의위원 인력풀과 지역의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을 통한 대전시의 정체성 찾기와 미래상 그리기를 통해 지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여야 한다. 또한 지역의 관계 단체나 업체가 직접적으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세밀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시민이 기대하는 커다란 그림을 완성하고, 시민이 참여하여 만들고, 시민이 함께 살아가는 터전이 되는 대전을 그리는 작업을 대전시는 준비해야 한다. 잠시 머무르는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 할 일이기에 사명감을 갖고 비장하게 나서야 한다. 우리 모두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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